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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Feb 14. 2022

일주일에 한 끼, 비건 메뉴


 더 이상 요리를 해나갈 흥미를 잃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차 백신을 맞은 뒤 느낀 입맛의 상실, 한 달 후엔 달아난 식욕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텅 빈 냉장고를 채울 의욕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겨울 내내 사다 먹기, 시켜 먹기, 대충 먹기를 반복했다.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탄수화물 위주의 자극적인 메뉴로 채운 최근의 식사들. 마치 이전의 나는 제대로 챙겨먹거나 음식을 만든 적이 없었던 사람인 것만 같았다.


 연초답지 않게 끝없이 가라앉고 있던 와중 친구의 제안으로 인왕산에 올랐다. 너무 춥지 않은 날씨에 어렵지 않게 정상을 다녀와 우리가 향한 곳은 사찰음식점, 그러니까 비건 식당이었다. 같이 간 친구가 오랜 기간 비건 지향의 식사를 챙기고(페스코 베지테리안) 있는 중이라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곧 내게는 비건식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나 스스로 너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경험을 또 다른 친구에게 들려줄 때마다 나름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 방문했던 비건 식당.



 사실 건강이든, 환경 문제든 내가 먹는 음식에서 채소의 비중을 늘려야 할 이유는 흘러넘쳤지만 꾸준히 먹을 기회를 만드는 것이 부족했다는 점도 떠올랐다. 그래서 이를 정기적으로, 그리고 의식해서 일주일에 한 끼는 비건식을 챙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 얘기를 하니 이런 방향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고, ‘일주일에 한 끼 정도라면 괜찮아요’라든지, '나도 채소를 많이 먹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참여 의사를 밝히는 지인이 있었다.


 결국 최근 나의 이야기와 비건 메뉴에 관심을 보였던 지인을 끌어모아 오픈 톡방을 개설하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끼만 비건, 혹은 채소 위주의 식사를 챙겨 먹고, 인증하는 방. 그 지인들의 참여도와는 별개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비건을 지향한 끼니를 인증해 올리게 되었다. 모두가 시도해 볼 만한 간단한 레시피라면 함께 올려두었다.



자연스럽게 제철 식재료에 대한 관심도 늘게 되었다.



 꾸준히 인증하는 동안 비건 식당에 가는 일도 있지만 두유 리조또라든지, 구운 버섯을 올린 카레, 배추 된장국 등 신선한 채소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집에서 몸을 움직여 요리에 시간을 쓰게 되는 일이 따라왔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으로 비건 메뉴를 계획해 챙기는 이 과정들이 나만의 레시피를 모으는 데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일단 한 번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어렵지, 시작을 하면 사다 놓은 식재료를 어떻게든 소진해야 했으므로 의무적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된다. 하나의 예로, 알배추를 사 와서는 샤브샤브, 쌈, 배추 된장국, 배추전으로 마지막까지 먹어야 하는 식이었다. 배추된장국에 곁들이려고 샀던 달래의 여분은 달래장이 되어 콩나물밥이라는 메뉴를 만들게 했고, 남은 콩나물은 무침으로 또 다른 한 끼 메뉴가 될 예정이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채소를 버리지 않고 다 먹어 없애려는 노력이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핑계나 계기로 나의 냉장고를  비울지는 모르는 . 그것이야말로 정리도 필요 없는, 말끔한 냉장고를 실현하는 방법  하나겠지만   있는  꿋꿋이 챙겨 먹으며  지치는 시간들을 통과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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