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배달 받을 때마다 생긴 플라스틱 용기를 씻는 일은 매번 어렵다. 용기 자체에 요철이 많은 데다, 기름기는 쉽사리 씻겨 내려가지 않고 색이라도 배면 좀처럼 말끔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시킬 때마다 내 앞에 주어지는 개수도 상당하다. 설거지할 때면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조그만 용기들로 반찬이, 혹은 소스가 담겨 왔다. 이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수고를 피하고자 치울 때의 수고로움을 받아들이는, 그야말로 조삼모사적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온 마음으로 투덜거리면서. 직접 용기를 가져다 포장하는 결단으로 이 지겨운 악순환을 끊어보기로 했다. 흘러넘쳐버린 재활용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올 때의 괴로움이 유독 커다랗던 날이었다.
새로 생긴 것은 스텐통, 1.4L의 푸드캐리어로 무게는 가벼운 편이고 평소에 내가 선택하는 메뉴를 위해 골랐다. 경험상 1인분의 다양한 메뉴를 위해 1.5L의 용량은 필요하고 국물이 많거나 2인 이상일 경우엔 그 이상의 용기나 냄비를 직접 들고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샐러드 포장하기
시작은 여전히 지속 중인 1주 1식의 비건 메뉴 실천을 위해 사왔던 그릴드 머쉬룸 샐러드였다. 샐러드 전문점은 난이도가 꽤 쉬운 편인데, 소스를 아예 뿌려달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소스도 함께 받아오게 됐다는 것이 실수였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샐러드 체인점을 갔고, 다음엔 거리가 멀지만 서브웨이에 다녀와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 소스는 뿌려서.
2인 엽떡 포장하기
이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메뉴다. 한번 시킬 때마다 세 번에 걸쳐 나눠먹는 떡볶이 한 통을, 끝내 다 먹어치우고 잘 닦이지도 않는 용기를 힘들여 씻을 때면 찾아오는 허무한 느낌을 떨치기 위해. 먹을 때마다 양이 적은 2인 메뉴 그것도 용기를 가져가서 포장해오면 덜 먹고 덜 허무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매장에 도착해서 가능한지 물어보고(가능하지 않아도 먹으려는 생각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단무지는 받아오지 않았다.
탕짜면 포장하기
가끔 탕수육이 먹고 싶을 때 먹는 탕짜면을 동네 중국집에서 사왔다. 배달을 하지 않는 곳으로 맛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걸어서 3분도 안될 정도로 가까운 곳이라 면이 불거나 할 염려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1인분이지만 2가지 메뉴를 위해 각각의 용기를 챙겨갔고 사장님은 “이게 그 용기내 뭐뭐 아니냐!”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조금 놀랬다. 용기내 챌린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는데, 거부감이 전혀 없어 보이셔서 기쁘기도 했다.
쿠키 사오기
꼼짝도 하기 싫은 일요일 오전부터 몸을 일으킬 명분이 되었던 쿠키 사다 먹기. 포근하게 씹히는 쿠키를 좋아하는 나는, 검색 끝에 쿠키 가게를 찾아내 첫 시도를 했다. 쿠키 포장이래봐야 그 부피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지만 마음먹고 가는 김에 작은 밀폐용기를 챙겼다. 다행히도 좋아하는 식감의 쿠키였고 다음에 방문엔 높이가 있는 원형 유리용기에 담아온다면 두고두고 기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서 나열한 후기 외에도 김밥이라든지 닭강정처럼 하나씩 집 주변의 메뉴를 포장해오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이 해내고 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을 시도한 적이 있고 그 기간엔 꽤나 아픈 기억이 누적됐기 때문에(이전 글에 기록되어 있다) 시작 전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다. 용기를 거부하는 식당에, 용량 가늠이 은근 어려워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많았던 것. 무엇보다도 나갈 때부터 가지고 가지 않는 이상 집에 들러 챙겨나가야 하는 일이 상당히 귀찮고 여전히 귀찮다. 그래도 전보다 가까운 곳에서 꽤 많은 시도와 성공을 했으니 동선을 넓히고, 가볼 만한 곳들을 꾸준히 업데이트할 참이다.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더더욱 좋겠다.
앞으로 도전려는 메뉴들: 바지락 술찜, 팟타이, 잠봉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