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하면서 크게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속한 공간이 내 마음과 멘탈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거였다. 작게는 설거지를 바로바로 안 한다는 것으로 뭐든 회피하려는 마음을 발견하는 것도 있고 빨래를 제때 안 갰다거나, 침대 주변이 어지럽다는 게 눈에 보이면 유독 바깥출입이 적었다든지, 체력이 떨어졌고 잠을 잘 못잔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특히 널브러진 물건을 보면 어떤 것을 시도했다거나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만뒀는지 그대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문제 상황을 느끼고는 이때는 체력을 아껴야 한다, 이때는 최대한 제시간에 잠을 자야겠다는 사소한 노력을 시작하기도 했고.
가끔씩 들춰보는 책 <정리하는 뇌>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잡동사니들과 마주치면 여성들은(남성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치솟고, 코르티솔 수치 상승은 만성적인 인지장애, 피로,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몸과 뇌는 어지러운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 끊임없이 대응할 수밖에 없고 다른 일에 써야 할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는 것. 여기에 정돈되지 않은 집에 사는 사람은 물건들이 정돈된 집에 사는 사람보다 과체중이 될 확률이 77%가 높다는 통계를 본 적도 있다. 정리 상태를 통해 저의 건강과 마음 상태를 보는 건 근거없는 판단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간혹 주위에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상태가 편하다는 사람들이 손을 들며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나의 기준으로 질서를 부여한 거라 편한 것인지, 아니면 회피하는 것이 좋고 살던 대로 사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리된 상태가 나에게 왜 좋은지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가장 심할 때, 무기력한 시기에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비로소 그다음에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다. 정리수납을 배우면서 나는 러닝을 다시 시작했고, 그 결과가 어떻든 하프마라톤에 도전해 완주를 해보기도 했다. 정리를 통해 변화된 모습, 눈에 띄는 물리적 결과를 보니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닌 내 삶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게 됐다. 쓰다보니 너무 거창해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내가 겪은 변화 덕분인지 의욕이 없다거나, 무엇을 해야하고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슬쩍 정리해보기를 추천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물욕의 정도가 줄어든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물건이나 소비로 기분을 달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세상엔 ‘크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지면 좋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나의 무기력한 시기 대부분을 그런 물건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나에겐 관심도 없는 주변을 신경 쓰면서. 그런 정보를 굳이 발견하고 수집하지 않으니, 소비도 줄고 물건도 줄었다.
실은 내 자신에게도 미처 보지 못한 소비에 대한 제어 능력, 잘 버릴줄 아는 결단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확신을 꾸준히 지키기 위해, 귀찮아도 ‘정리’를 계속하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