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스트레스가 많고 생각이 많아지는 날엔 내가 수없이 만난 양면적이고 애매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어느 한 쪽으로 딱 떨어지게 판단할 수 없었던 일이나 감정들. 제 자리를 만들어 둔 물건처럼, 조금의 고민 없이 모든 걸 맞는 쪽으로 밀어 넣으면 좋겠지만 어떤 것들은 어디에 어떻게 분류할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억지로 선택하거나 판단을 유보한 채 잊어버린 일들을 끄집어 내어 곱씹어 보는데, 지금 생각해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반복하고야 만다.
한편 집에 들어간 직후, 티셔츠를 벗어들면 또 잠깐을 생각한다. 내게는 옷장 밖 하나의 옷바구니가 있다. 옷장에 들어가기도 그렇다고 바로 빨기도 애매한 티셔츠 같은 것들이 대충 접혀 처박힌 바구니. 애매한 것들의 집합, 애매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애매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정리 상태를 유지하려는 나의 예민함을 살려 위치를 정해두었을 뿐 티셔츠쯤은 어디에 둘지 결정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이건 한 번 더 입고 빨면 좋겠으니 옷장 앞 바구니에 넣고, 뭔가 묻어있는 것은 미리 조금 지워 바로 빨아버린다든가. 모든 일들이 저런 바구니 속 티셔츠 정도의 고민의 무게를 갖고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최근 일을 하며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중 하나는 윗사람에게 솔직한 태도로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후 내 이야기를 오히려 약점으로 쓴다던가. 덕분에 특정 누군가에게 할 이야기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또 어떤 대화를 통해 나는 그 사람 말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애쓰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뾰족한 상태로 대화에 집중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시 내용을 곱씹는데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말았다. 대화를 곱씹을수록 앞뒤가 안 맞는 것들 투성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사실 내가 듣는 말의 대다수는 절대적으로 맞기만 한 말들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정답의 태도가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나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는 자세도 가져야 했다. 회사를 위해서는 온 열정을 쏟아야 성공하지만, 이 회사엔 열정을 바쳐도 보상이 미미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을 때 상처받지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태도로는 나 자신을 단절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분류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만 생기기도, 또 떠오르고 있다.
나는 지금도 무엇인가를 받아들었고, 어디에 넣기에도 애매한 생각이 들어 손에 쥔 채 머뭇거리고 있다. 아마 이건 분류가 포기된 채 그대로 방치되는 결말을 맞지 않을까. 나중에 꺼내보더라도 그 편이 당장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앞엔 판단을 기다리는 것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고 그 앞에서 나는 고민하기도, 낙담하기도 할 테지만 모든 일들을 티셔츠를 분류하듯 최대한 가볍게 대하고 싶다. 비록 바닥에 널브러진 티셔츠를 주워 다시 수습하는 일이 있다 해도 결국 그 때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