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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Aug 23. 2019

16. 아버지의 말실수

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며

나의 부친은 술을 잘 못하셨다. 주량이 반병 밖에 안됐고 한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셨다. 나는 부친에게서 술을 배웠다. 북한에서는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고 한다. 나도 고등중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5살 때쯤 부친이 술을 따라주셔서 술을 배웠다. 유전인지 술을 한 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숨이 가빠서 명절날이면 아버지에게서 받은 술 한두 잔에 해롱해롱해져서 바로 누워 자곤 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기분이 좋아져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에 술을 드시고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가 전쟁영화를 보다가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00아. 사실 저 때 말이야. 동부전선에서는 우리 인민군대가 먼저 쳐내려갔다”

그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인민군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아버지가 지금 술에 취하셔서 무슨 '반동' 같은 소릴 하고 계시는 걸까?” 



“아버지. 미국놈들과 괴뢰군놈들이 침략전쟁을 먼저 일으킨 거잖아요?”

“너희는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우지?” 이러시면서 아버지는 웃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인민군대가 먼저 공격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북한과 북한군은 당시 나의 세계관속에서 '절대선'이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기웃거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잘 믿어지지 않지? 그때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야” 이러시는 거였다. 아버지를 한없이 신뢰했던 나는 심한 갈등에 모대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배워왔던 것은? 그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광복둥이인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어리기는 하지만 직접 전쟁을 겪었고 전쟁 참가자들의 얘기도 더 많이 접했으니 6.25전쟁이 남침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단 얘기다. 그러나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하루아침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갈 수 있으니 입 밖으로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에서 '말반동'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기 쉽상이었다.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이 끌려갈 수 있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말조심이었다. 아무튼 그때 술을 드시고 하신 아버지의 말실수 때문에 며칠동안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그밖에도 해운 계통의 인텔리, 당 초급간부로 계시면서 외부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한국에 대해서도 엄청난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뤘다는 얘기를 한 두번 하신 적이 있다. 조선업은 세계 상위권이고 섬유산업과 자동차 산업도 엄청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고 얘기하시는 것이었다. 북한 기준에서는 참 '반동' 같은 소리였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잘 믿고 따랐던 나에게는 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그때부터인가 순진하고 북한의 선전이라면 다 믿던 나에게 조금씩 조금씩 불신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때 아버지는 실수하신 것이 아니라 바깥세상과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북한 당국의 선전과 교육 내용을 전적으로 믿고 있던 순진한 나에게 진실을 알려주시려고 술기운을 빌어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까? 3년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뵐 수 없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나의 유년과 학창시절 롤모델이었고 우상이셨다. 북한에서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부친께서 하늘나라에서는 장남이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흐뭇해하시기를, 영면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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