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지 (9)
친구 릴리와 함께하는 수요일의 그림들 (@Wednesday Drawings)의 그림 중 하나. 이번 수요일에는 하루가 아니라 한 주 내내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로 해보았다. 둘 다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초상화’를 그리자고 결정했다! 같은 재료만 써서 그리면 지루하니깐 각각 재료와 방법을 다르게 해서 그렸다.
흑백 초상화, 눈을 감고 그리는 초상화, 콜라쥬 기법 초상화, 색연필 초상화, 페인팅 초상화, 그리고 왼손으로 그리는 초상화 (친구와 나는 오른손잡이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같은 얼굴을 다른 날에 다른 재료와 방법으로 그리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양한 표현이 나오던지! 같은 사람을/이 그렸다고 해도 모를 정도다. 내 그림만 봐도 재밌었는데, 친구 그림을 보니 더 재밌었다. 이 프로젝트의 좋은 점은 같은 주제를 두 명이 얼마나 다르게, 때로는 비슷하게 그려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그림을 볼 때마다 배우는 것 또한 참 많다. ‘같은 색연필을, 물감을, 이렇게 촘촘하고 찐득하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식의 깨우침도 갖는다. 내가 만들어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이 친구 눈에는 최고의 그림으로 보일 때도 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끌어내 주고 약한 점은 보완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초상화’를 그리던 주에는 전체적으로 내 그림에 대한 자신이 없던 때였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감이 넘쳐난다는 뜻도 딱히 아니다.) 그래서인지 내 그림에서 소심한 선이나 색이 많이 보인다. 편지 내용도 죄다 ‘릴리, 내 그림은 최악이야.’ 하는 식의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봤을 때는 그렇게 최악인 그림들은 아닌데, 왜 그때에는 그토록 자신이 없었는지 참. 일 년 전으로 돌아가 내 등을 좀 다독여 주고 싶다. 괜찮아 그렇게 엉망진창은 아니니깐 너무 기죽지 마 하면서 말이지. 스스로의 그림을 저평가하지 않는 것도 지금 보면 기술인 것 같다. 이번 주 그림들은 사실밖에 꺼내놓기 싫은 그림 한 가득이었는데, 이렇게 수요일의 그림들 계정에 올려놓고 나니 오히려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해졌다. 여전히 아픈 손가락 같은 그림들이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3 배수 피드를 맞추기 위하여 세 번째 줄에 넣었던 “how to draw a self-portrait” 카툰. 아이디어는 내가 내고 릴리가 그렸다. 하지만 릴리가 구상해서 그려낸 카툰이 내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귀엽다. 오른쪽으로 넘겨서 다들 보세요 세상 사람들!
짧은 해석
1. 거울을 찾으세요.
2. 그릴 준비를 하시구요. (거울, 당신, 연필, 종이, 의자)
3. 자, 이제 스스로의 얼굴을 보세요.
4. 당신의 얼굴에서 그리고 싶은 부분부터 시작해요. 당신이 행복해질 때까지!
5. 끝입니다. 당신은 이제 초상화를 만들었어요.
아픈 손가락 같다는 내 초상화 한 뭉터기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
솔정 인스타그램과 포트폴리오
@pineconej
pineconej.com
수요일의 그림들
@wednesdaydra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