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지 (10)
평범했던 토요일 오후에 나갔던 산책 중에 지나친 생선가게를 보고 ‘저기는 나중에 꼭 그려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생선가게의 주인은 항상 있었을 그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게 안의 벽에는 가격표 대신 생선 포스터들로 가득 차있었다. 생선가게 주인은 물고기 포스터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토요일의 낮잠에서 깨어 저녁거리를 만들기 위해 온 것이었을까? 웬만하면 주말에 문을 닫는 영국의 상점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가게 문을 자연스레 열며 들어가던 그들은 아마 단골 가게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일행인 것 같던 두 손님과 그들을 무심하게 맞이하는 주인을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몰래 펼쳤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잠시 숨을 고르고 둘러보면 여기저기에 재미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이 엄청난 질문에 나는 크고 대단한 의미보단 작고 소소한 의미로 답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됨은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살아가는 성질이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출근을 하거나 학교를 가고, 사람들과 교제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그저 그런 식사여도 괜찮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그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 같은... 좋든 싫든 주어진 하루를 계속해 살아가고 살아내는 근성. 우리가 가진 가장 보편적인 ‘인간됨’이 아닐까? 멀리서 볼 때에는 딱히 대단할 것이 없고 따분하기까지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볼 때에는 각기 다른 인생과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는 이 작은 시간들 덕에 우리는 풍요로울 수 있다.
생선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주인에게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그저 그런 토요일이었겠지만, 그들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나는 꽤 괜찮은 토요일을 기록할 수 있었다. 혹시 아나? 생선가게를 멀리서 열심히 찍던 나를 보며 누군가는 그만의 또 다른 토요일을 보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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