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라지꽃

도라지꽃을 만나다

by 비움과 채움

산책을 하다 문득, 수풀 사이에서 조용히 피어 있는 도라지꽃을 보았습니다. 보랏빛이 어쩐지 눈길을 끄는 그 꽃은, 내 어릴 적 기억 속 어느 여름날을 데려왔습니다.


그 시절, 산에 오르면 도라지꽃이 천지였지요. 여기저기 수줍게 피어 있던 보라색 꽃들. 산길을 걷다 보면 발끝마다 작은 감동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집 뒤란 밭에는 하얗게 핀 백도라지들이 고요한 파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도라지를 캐어 약으로 쓰고, 아이들인 우리는 봉오리를 장난 삼아 터뜨리며 놀곤 했지요. 피기 전의 봉오리를 손끝으로 눌러 톡 터지게 만들었다가, 어른들에게 혼이 나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도라지꽃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말처럼, 도라지꽃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 옛 기억을 꺼내주는 사랑스러운 전령일지도 모릅니다. 꽃은 아무 말 없이 제때에 피고, 또 제때에 사라지지만, 마음속에 남겨놓는 흔적은 오히려 더 또렷합니다.


오늘 본 도라지꽃도 그랬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 꽃 하나로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잊고 지낸 시간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어릴 적 도라지꽃 사이를 뛰어다니던 그 작은 발걸음과, 장난기 가득했던 웃음소리. 그리고 지금, 다시 만난 도라지꽃 앞에서 느낀 고요한 그리움.

사랑도, 기억도, 꽃처럼 언젠가 다시 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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