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시대를 바라보며

유모차속의 반전

by 비움과 채움

지하철은 하루 수천 명의 삶이 오고 가는 작은 사회다.

그날도 평소처럼 조용한 정적 속,

크고 고급스러운 유모차 하나가 덜컥 밀려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렸다.

“아기가 타고 있나 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정거장 지나,

아기 울음소리 대신 묘한 끙끙거림이 들린다.

시선은 다시 유모차로 쏠린다.

그리고—


"엄마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양막 사이로 긴 혀를 늘어뜨린 강아지가 얼굴을 쏙 내민다.

순간, 지하철 전체의 표정이 ‘일시 정지’.

놀람, 어이없음, 당혹, 침묵이 뒤섞여

묘한 공기가 흐른다.


그 침묵을 깨운 건 한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개를 낳았어? 개보고 엄마라니, 나원참…"


그 말에도 불구하고

유모차 주인은 강아지를 향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우리 애기~ 조용히 하자~”


가족의 정의는 어디까지인가


이제는 강아지를 자식이라 부르는 시대.

‘엄마’와 ‘아기’라는 말이

사람에서 반려견에게 자연스럽게 옮겨간 세상.


누군가는 말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것일 뿐”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혀를 찬다.


사랑의 대상이 바뀐 게 잘못일까?

아니면, 그 표현의 방식이 과한 걸까?


문명인가, 과잉인가


반려견을 가족처럼 여기는 태도는

사랑과 책임의 확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사회의 상식을 흔드는 순간,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공의 경계를 시험하는 일이다.


지하철 유모차 안에 아기가 아닌 강아지가 타는 풍경,

그 강아지를 “아가”라 부르고

스스로 “엄마”라 칭하는 목소리.

우리는 지금, 인간 중심의 정의가 바뀌고 있는

묘한 전환기에 서 있다.


그 전환을 인정할 것인가, 우려할 것인가.

그 판단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우리 사회가 서로의 경계를 어디까지 존중하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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