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상은 익숙함으로 짜여 있다. 늘 타던 지하철, 늘 내리던 역, 늘 오르던 출구.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이 움직였다. 지인과 통화에 몰두한 채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습관처럼 내렸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출구를 향했다. 머릿속은 대화에 묶여 있었고, 몸은 익숙함에 끌려갔다.
통화가 끝나고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건물들이 낯설었다. 익숙했던 간판과 길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을 막아섰다. “잘못 나왔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내가 원하던 출구의 위치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현재 내가 선 자리와 머릿속의 지도가 맞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떨어진 듯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다시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갔다. 반대쪽 통로를 택하면 될까 싶어 발길을 옮겼지만, 또 다른 낯선 세상이 펼쳐졌다. 순간 매분 같은 당황이 밀려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잠시 스쳐가는 불안이 머릿속을 채웠다. 혹시 치매? 아니, 아니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마음 한편은 묘한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지하철의 지하 공간은 거대한 미로였다. 상가와 통로가 겹겹이 얽히고설켜 출구가 방향감각을 시험하듯 숨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예전에 들렀던 화장실, 편의점, 모자 가게, 모조품 상점… 조각난 기억들이 지도처럼 머릿속에 흩어졌다.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마침내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의 안도감이라니. 무사히 집을 찾은 여행자처럼 “휴우—”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헤맴은 단순한 길 잃음 이상의 경험이었다. 한순간 길을 잃으면 마음도 쉽게 불안해지고, 작은 혼란이 큰 두려움으로 커진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깊어져 “내가 나를 잃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에 닿는다. 하지만 동시에 깨닫는다. 우리가 의지하는 ‘습관’이 얼마나 무의식적이며, 그것이 깨어졌을 때 비로소 나를 자각하게 된다는 사실을.
길을 헤매는 동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단순한 출구 하나를 찾는 일이었지만, 삶에서도 방향을 잃을 때가 이와 같음을 느꼈다. 한눈을 팔면 길을 잃고, 안일함에 기대면 순간의 방황이 시작된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고, 차분히 숨을 고르면 결국 길은 다시 나타난다.
그날의 미로 같은 지하철역은 묵묵히 말해주었다.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다시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혼란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