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by 비움과 채움

기상예보에서 ‘안개’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밤사이 고기압권 아래서 복사냉각이 활발해지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이윽고 땅에서 스며오르듯 흰 장막이 깔린다.

새벽과 아침 사이, 평소 보이던 길이 사라지고 세상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안개는 아름다움을 가장한 두려움이다.

초가을 아침 들녘 위에 은빛처럼 부유할 때는 잠시 서정적인 풍경으로 마음을 흔들지만, 도로 위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시야가 단숨에 200m, 아니 100m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좁아지고,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온다. 오래전, 고속도로에서 벌어졌던 19중 연쇄 추돌사고가 아직도 생생하다.

차들은 브레이크를 밟을 틈조차 없이 서로에게 들이 받혔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날 이후, 안개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하얘지고, 몸이 기억한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안개의 피해는 단지 교통사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항공기와 선박의 운항을 방해하고, 농작물에도 해를 끼친다.

안개가 만든 습도와 곰팡이는 농부들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돌리기도 한다.

차가운 공기와 높은 습도는 호흡기를 자극해 기침과 천식을 악화시키고, 햇살을 가로막아 우울감까지 몰고 온다.

계절이 바뀌어야 할 때 우리 몸과 마음이 햇살을 덜 받으면 쉽게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개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숨결처럼, 스스로 생겨나고 스스로 흩어진다. 그래서 더 무섭다.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올해 가을도 어김없이 이 녀석의 심술이 시작될 테다.

안개가 만들어낼 불안과 피해를 생각하면 마음이 잔뜩 경계심으로 흐려진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을 땐 속도를 늦추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비책을 마련하고, 건강을 지키려면 환기와 습도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두려움은 준비로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으니까.


가을은 늘 안개를 데리고 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안전과 평안을 지키려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해진다.

안개는 우리를 시험하는 계절의 그림자이자, 조심하라는 자연의 신호인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길을 잃은 순간, 나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