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넘침에서 갈증으로

by 비움과 채움

오늘도 생수 상자가 집 한구석에 쌓였다.

물을 사 먹다니 —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풍경이다.


우리가 마셨던 물은 늘 곁에 있었다.

어릴 적 집 앞 우물, 국민학교의 펌프, 개울가의 흐르는 냇물, 밭둑 옹달샘…

도시로 이사 와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다.

마실 물은 늘 손 닿는 곳에 있었고, 특별히 값이 매겨질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88 올림픽 때 외국인이 생수를 마시는 모습을 처음 보고 우리는 콜라나 사이다처럼 특별한 음료로 여겼다.

90년대 중반, 제주도 생수가 출시되자 ‘사치’라 수군거렸다.

정수기 광고가 안방을 파고들고, 너도나도 깨끗한 물을 사고 저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이제 물은 습관처럼 돈을 주고 사는 상품이 되었고, 집 안 구석에는 플라스틱 병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풍요로움 속의 안일함은 무섭다.

수돗물은 안전하다고 도시가 아무리 홍보해도, 사람들은 선뜻 컵을 들지 않는다.

‘깨끗한 물’을 믿지 못하는 마음, 보이지 않는 불신이 이미 우리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물이 부족할 거라는 미래를 잘 상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어린이가 흙탕물을 떠 마시는 장면을 보며 잠깐 마음이 저리지만, 곧 잊는다.

“우리는 물 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기후 위기는 이미 수자원을 흔들고 있다.

가뭄은 더 길어지고, 집중호우는 오히려 수질을 해친다.

인구와 산업은 물을 끝없이 끌어다 쓰고, 플라스틱은 지하수까지 스며든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저렴하고 풍족한 물’은 사실 어쩌면 유예된 호사일지 모른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당장 내가 쓰는 물의 가치를 의식하는 것,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갖는 것에서 시작된다.

깨끗한 수돗물을 되살리고, 물을 저장·정화하는 기술을 지지하고, 한 병의 생수가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하는 일.

우리가 관심을 돌려야 할 곳은 어쩌면 저 멀리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우리 집 수도꼭지일지 모른다.


오늘 나는 편리함으로 배달된 생수를 쌓아두며 묻는다.

“이 풍요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젠가 ‘물을 사 먹다니’가 아니라 ‘물을 살 수 있다니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오지 않길,

우리의 안일함이 늦은 후회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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