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을 오르는 이유

by 비움과 채움

오늘 오후, 설악산 소청대피소에 닿았다.

수차례 들러 묵었던 곳이라 내 집처럼 편안하다.

저녁밥을 지을 준비를 하다 문득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봉정암이 고요히 숨을 고르고, 그 너머 용아장성은 늠름한 등뼈를 드러낸다.

오른편으론 공룡능선이 길게 뻗어 있고, 동쪽에는 울산바위가 묵직한 자태로 서 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그토록 설악을 자주 오르십니까?”

나는 늘 대답한다.

“설악은 내게 마운틴 오르가슴을 선사하는 산이라서요.”

숨이 차오르고 땀이 등으로 흐를 때 한 걸음 한 걸음이 세상의 무게를 잊게 한다.

정상에 서면 모든 피로가 빛으로 바뀌고, 가슴속 깊은 곳까지 짜릿한 전율이 일어난다.

그 황홀을 알고 있기에 나는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다.


오늘

오색에서 시작된 길을 따라 대청봉을 찍고, 중청을 거쳐 소청까지 맨발로 올랐다.

이런 날에는 더욱 그 황홀감 극에 달한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흙과 돌의 감촉, 바람과 물기, 모든 것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오늘 밤 산장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걸리고 은하수가 흐를 것이다.

대피소 안을 가득 채울 코 고는 소리조차 자장가가 될 것이고, 내일 아침, 구름을 가르고 펼쳐질 설악을 상상하며 잠들 것이다.


내일 아침 난, 설악과 인사를 나누고

또 설악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 넘침에서 갈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