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의 짧은 공포, 그리고 우리의 과제

by 비움과 채움

어제 퇴근길 지하철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은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젊은 청년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벽을 두드리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순간 객실 안은 숨소리조차 사라졌다.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눈을 피했다.

누군가의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이 공기를 짓눌렀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신사가 벌떡 일어섰다.

“너, 왜 그래!”

단호한 목소리에 청년은 잠시 멈추더니 약지를 세워 보이고 혀를 날름 내밀었다.

그러곤 순식간에 옆 칸으로 달아났다.

허공에 남은 건 신사의 허탈한 한숨과, 여전히 식지 않은 객실의 불안뿐이었다.


요즘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지하철이나 버스,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정신적 장애나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과 불쾌감, 공포가 뒤섞여 묘한 감정이 스친다.

그들의 고통과 질환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막상 그들이 돌발 행동을 보이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도 위험할 수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 말이다.


물론 이들의 행동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치료의 손길이 닿지 않거나, 사회적 돌봄망이 부실한 현실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공공장소에서의 무분별한 행동이 타인에게 공포와 불안을 전염시킨다는 점이다.

이해는 공감에서 시작되지만, 안전은 제도와 관리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 경계가 무너질 때, 사회 전체는 불안이라는 또 다른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지만, 동시에 공공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한다.

치료와 보호, 그리고 관리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하철 안의 그 짧은 공포는 단지 한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과 통제의 균형을 잃은 사회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공포는 한순간이었지만,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사는 사회’를 원한다면,

이해와 안전 사이의 해법을 이제는 진지하게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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