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오르는 길가에, 바람보다 먼저 가을이 와 있었습니다.
햇살은 부드럽고, 하늘은 높고 푸르렀습니다. 그 길목마다 구절초가 하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며, 마치 산이 숨 쉬는 듯한 고요한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구절초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들꽃답게 소박하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자신의 향기로 세상을 다독였습니다. 그 향기는 깊고도 은은해서, 한참을 서 있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마음으로 느끼는 동안 어느새 가을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하얀 꽃잎은 마치 첫눈이 내려앉은 듯, 파란 하늘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한 송이, 두 송이, 바람 따라 나란히 선 구절초들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햇살이 스치면 은빛으로 반짝이고, 바람이 지나가면 속삭이듯 흔들립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길 한편에서
그저 자신만의 시간으로 피어나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구절초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저 그 자리에서 제 빛깔로 살아가는 것.
‘선모초’라 불렸던 그 이름처럼, 구절초는 어쩐지 신비롭고도 따뜻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고요해지고,
향기를 들이마실수록 세상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늘 산길은 유난히 길었습니다.
걸음을 멈출 때마다 구절초가 있었고,
그 꽃 앞에서 나도 모르게 오래 머물렀습니다.
가을은 그렇게 구절초의 숨결을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마음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