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
한자로 풀면 ‘작은 눈’이라지만, 꼭 눈이 내려야 하는 절기는 아니다.
하늘은 작은 눈 대신 고요한 기척만 건네고, 땅은 아직 얼지 않은 살얼음의 얇은 숨결만 품는다.
한겨울은 아니고,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늦가을이 겨울의 길목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시기.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절기를 ‘소춘(小春)’이라 부르며
겨울 속에 잠깐 스며드는 따스함을 읽어냈다고 한다.
예부터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다.
소설 무렵이면 바람이 한층 날카로워지고 기온도 뚝 떨어져, 지갑이 얇아도 솜옷을 장만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때의 추위가 있어야
보리가 얼음 아래에서 잘 버티고,
이듬해의 밥심이 살아난다는 농심의 기원이 담겨 있었지 않을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소설의 찬 기운은 추위가 아니라 희망의 전령이었으리라.
“초순 홑바지가 하순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도 있다.
음력 시월 하순, 소설이 들면
가을의 가벼운 옷자락은 제 역할을 다했으니 들어가고,
겨울의 두툼한 바지는 서랍에서 꺼내 입었을 테고.
몸보다 먼저 계절을 읽어낸 옛사람들의 지혜가
이 짧은 속담 하나에 오롯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오늘의 소설은 다르다.
기온은 영상, 바람도 느슨하고
햇빛은 오히려 늦가을처럼 포근하다.
절기의 이름만 빌려온 듯, 계절의 매뉴얼은 잠시 잊힌 모양이다.
팍팍하게 살던 시절
그래도 예전 어르신들은
“김장만 잘해놓고, 쌀 사놓고, 연탄 들여놓고 나면
추위가 닥쳐도 한숨 돌린다”라고 말씀 하셨다지?
춥다고 해서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추위를 맞을 준비를 하며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던 지혜였던 셈.
절기는 절기대로 흐르고,
날씨는 날씨대로 변덕을 부려도
이 맑은 햇빛 앞에서 문득 생각한다.
겨울은 어쩌면 추위가 아니라,
따뜻함을 알아채게 하는 또 하나의 계절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