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건 쓰다 장 파하지 않으려면

by 비움과 채움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 10분 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순간, 친구 녀석이 미안함과 초조함을 뒤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오늘은 망건 쓰다 장 파하게 생겼다.

집사람이 화장하고 옷 고르고, 가방 고르고, 신발 고르느라… 나 지금도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누이가 외출하려 하면 집안이 한바탕 난장판이 되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망건 쓰다 장 파겠다.”

그 말에는 속이 터지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살아보니 그 말이 왜 어른들의 입에서 자주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가,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지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보곤 했다.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도 자료는 안 보고, 책상 정리부터 시작하는 동료.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도 짐 하나 챙기지 않고 늑장을 부리는 룸메이트.

중요한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이것저것 미루며 시간을 질질 끄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곤 했다.

“망건 쓰다 장 파겠다.”

장터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닫히고,

기회도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돌아보면 우리 인생은 늘 ‘장날’과도 같다.

준비만 하다 보면 장터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사고 싶었던 것, 얻고 싶었던 것,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쉬움만 안고 돌아오는 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곧 할게, 내일 하지 뭐, 조금만 더 준비하고 등등.

하지만 준비는 적당해야 하고,

행동은 제때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의 손을 잡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속담이 주는 교훈이 참 좋다.

어떤 일이든 앞일을 생각해 미리 준비하고,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결국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망건을 고쳐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오늘은 한 발 먼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 한 걸음이 내일의 기회를 붙잡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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