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 폰을 내려놓고, 세상으로 들어오다

by 비움과 채움


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아갈 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오늘 점심 먹자.”


이 한마디가 이상하게 들린 건, 선배님이 평소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때문이다.

절약이 몸에 밴 자린고비, 얼마 전까지만 해도 3G 폴더폰을 고집하시던 분이셨다.

나는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선배님, 요즘 세상에 그런 폰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제 제발 좀 바꾸시죠.”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전화는 걸고 받기만 하면 됐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해?”


그래서 점심을 먹자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는 사실이 더욱 뜻밖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선배님 손에 들린 것은, 뜻밖에도 최신 스마트폰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아는 그 선배님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이세요?”

조심스럽게 묻자, 선배님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씀하셨다.

“바꾼 지 석 달쯤 됐다. 형수님 고집을 결국 못 이겼지.”


사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민회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강좌에 신청해 ‘열공’ 중이시란다.

컴퓨터 기초부터 스마트폰 사용법, 문서 작성, SNS, AI 활용까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계시단다. 그중 스마트폰 배우는 시간이 가장 신나신단다.

“요 녀석, 요술쟁이 같아, 손주보다 더 좋지 뭐냐” 하시며, 스마트폰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그 말이 어쩐지 뭉클하게 들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싶었다.


선배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다.

“네가 그때 스마트폰으로 바꾸라 할 때 진작 바꿨으면, 이 신천지를 더 일찍 만났을 텐데…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야.”


말속에는 후회보다 기쁨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선배님이 되묻는다.

“너 이 기능 알고 있니?”

며칠 전에 알게 되셨다며, 말만 하면 뭐든 찾아주고, 그려주고, 설명해 주는 ‘챗GPT’ 이야기를 꺼내셨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듯, 눈빛이 반짝였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환생해서 이 세상을 보신다면,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놀라서 바로 다시 돌아가실 거야.”


선배님의 그 말에 웃음이 커졌지만, 그 속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오늘의 세상은 정말 광속으로 변하고 있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새로운 기술이 삶의 풍경을 바꿔 놓는다.


차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스마트폰에 홀딱 빠지신 거죠? 정말 잘하셨어요.”


예전엔,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계신 듯한 선배님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선배님은 달랐다.

새로운 세상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

늦었지만 늦지 않은 용기를 낸 사람처럼 보였다.


구폰을 내려놓은 것은 단순히 기계를 바꾼 일이 아니었다.

그건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로 한 선택이었고,

배우는 기쁨을 다시 손에 쥔 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선배님이

참으로 자랑스러워 보였고 달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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