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을 잃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비움과 채움


외출길, 인도 위에 홀로 떨어진 장갑 한 짝을 보았다.

누군가 급히 걸음을 옮기다 흘린 모양인데,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친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장갑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화단의 키 큰 나뭇가지에 살짝 걸어 두었다.

혹시라도 장갑 주인이 돌아오는 길에,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또 다른 장갑을 보았다.

이번에는 하얀 털장갑.

여러 사람에게 밟힌 듯 군데군데 얼룩이 배어 있었다.

어쩌면 오늘 하루 동안만 해도, 이렇게 주인을 잃은 장갑들이 곳곳에 남겨졌을 것이다.


나도 장갑을 여러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한 켤레를 통째로 잃어버릴 때는 덜 아까운데,

한 짝만 사라지면 그 서운함이 훨씬 더 크다.


왜일까.

다 잃었을 때는 깔끔한 끝이 있다.

“아, 잃어버렸구나.”

거기서 이야기는 단숨에 종결된다.

언젠가 누군가가 주워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작은 위안도 남는다.


그러나 한 짝만 잃었을 때,

남겨진 그 하나는 끝내 역할을 잃는다.

손을 보호할 수도, 따뜻함을 만들 수도 없다.

짝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전했던 존재가 무용해지는 것이다.


남겨진 장갑 하나는

그 자체로 ‘결핍’의 상징이 된다.

아직 형태는 완전하지만,

기능은 반쪽이고, 의미마저 흔들린다.

쓸 수 없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그 애매한 상태가 오히려 더 아프다.


사람의 마음도 장갑 한 짝과 닮았다.

관계를 완전히 잃었을 때보다,

한쪽만 남아 있을 때가 더 아픈 법이다.

잊지 못하는 쪽이 더 오래 앓고,

홀로 남겨진 기억은 스스로의 쓸모를 묻는다.


짝을 잃은 장갑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하지만 다 잃어버린 장갑은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건넬 수도 있다.

끝났다는 사실이

다른 시작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짝을 잃은 장갑은 고독하고,

모두 잃은 장갑은 오히려 자유롭다.

남겨진 것이 많을수록 상실은 무겁고,

완전히 비워질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들.

인간의 마음도 장갑과 다르지 않다.


장갑의 운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반쪽이 되는 고통은,

온전히 잃는 고통보다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는 언젠가 다시 채워지지만,

짝을 잃은 자리는 스스로 채워지지 않는다.”


겨울 길 위에서 주인을 잃은 장갑들은

결국 우리 삶의 이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운 진실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진눈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