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중국집에서
요리를 시켜 고량주 한잔 하자고 한다.
녀석의 중화요리 예찬은 늘 그렇듯
침이 마를 정도다.
중화요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불과 칼의 예술’이라며
화려한 불맛과 다양한 식재료의 조화,
볶고 튀기고 삶고 끓이는 조리법 덕분에
영양과 위생 면에서도 완벽한 음식이라고
만일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해댄다.
날것을 먹는 횟집은 질색이라던 말도
어김없이 덧붙인다.
소위 단골집이라며 들어간 곳은
고급 중식당은 아니었지만
붉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내부,
복을 상징하는 글씨와 그림들이
전형적인 중국집의 분위기를 풍긴다.
주인장이 녀석을 반갑게 맞이하는 걸 보니
단골은 단골인가 보다.
녀석은 고량주와 라조기를 주문하고
자장면은 후식으로 내달라고 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중국집은 한때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졸업식 날, 이삿날,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자장면, 짬뽕, 탕수육은
그 시절의 대표적인 소울 푸드였다.
무심코 벽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보다
문득 한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짜장면’
중학교 시절 국어시험이 떠올랐다.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썼다가
틀렸다고 채점된 기억.
억울해서 선생님께 따졌던 날도 생각난다.
그때 분명 자장면이 표준어라 하지 않았던가.
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써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
그런데 테이블 위 메뉴판에도
분명히 ‘짜장면’이라고 적혀 있다.
자장면과 짜장면.
호기심이 발동해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2011년 8월부터
국립국어원은 ‘자장면’과 ‘짜장면’을
모두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외래어 표기 원칙상 ‘자장면’만 표준어였지만,
실생활에서 ‘짜장면’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현실을 반영해
표준어 규정을 바꿨다는 설명도 달려 있였다.
나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괜히 혼자 멋쩍어졌다.
그리고 솔직히 생각했다.
짜장면이라는 말이
왠지 더 정감 있고 맛있어 보인다고.
라조기에 고량주가 몇 잔 들어가자
녀석의 중화요리 지식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여러 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주안상이 끝날 즈음
후식으로 짜장면이 나왔다.
졸업식 날 먹던,
이삿날 먹던
그 옛날의 짜장 맛이다.
젓가락으로 두 번 감아올리니
면이 벌써 없다.
양이 적으니 오히려 더 맛있다.
말 그대로 후식 짜장면이다.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장면과 짜장면을
함께 써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 국어시험을 다시 보게 된다면
틀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배를 더 부르게 만들고
취기가 더 기분 좋게 오른 건
녀석과 주고받은
농과 참의 대화였다
그리고 자장면과 짜장면이
같이 대접받는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