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갖은 술자리
마무리 안주로 번데기를 시켰습니다.
메뉴판에 있는 번데기라는 문구에 바로 꽂혀 망설임 없이 주문을 넣었습니다.
길거리 노점에서나 포장마차에서 접했던 번데기 안주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마늘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가미하여 나온 이 안주은 익숙하고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고, 젓가락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래된 기억 속 번데기가 떠올랐습니다.
1960~70년대 고향땅
누에는 농가의 중요한 부업이었습니다.
뽕잎을 먹고 자라는 작은 생명 하나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었고, 누에고치는 곧 현금과도 같은 귀한 소득원이었습니다.
봄이면 어른들은 뽕잎을 따고, 채반 위에는 수천 마리 누에가 ‘사각사각’ 빗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잎을 갉아먹었습니다.
그 소리는 배고픈 시절에도 희망처럼 들렸습니다.
누에는 잠(蠶), 또는 하늘이 내려준 벌레라는 뜻의 천충(天蟲)이라 불렸습니다.
그 이름처럼 누에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존재였습니다.
고치를 삶아 실을 뽑아내면 반짝이는 명주실이 되었고, 그 실은 곧 옷감이 되고 돈이 되었습니다.
누님들과 동네 아주머니들이 밤늦도록 물레를 돌리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손길 속에는 가족을 위한 책임과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을 뽑고 남은 부산물, 바로 번데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훌륭한 간식거리였습니다.
톡톡 터지는 식감, 고소한 향, 그리고 허기를 달래주던 따뜻함.
번데기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보릿고개를 건너게 해 준 고마운 단백질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번데기는 가난 속에서도 든든함을 안겨주던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누에는 농가 경제의 숨은 버팀목이었고, 누에고치는 땀의 결실이었습니다.
뽕나무 한 그루, 채반 하나, 그리고 정성 어린 손길이 모여 한 가정을 살리고 마을을 움직였습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번데기는 마지막까지 버려지지 않는 소중한 먹거리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번데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단백 영양식으로 재조명되며 밀키트와 간편식으로 등장했고, 건강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거 생존의 음식이었던 번데기가 오늘날에는 웰빙 식품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한 숟가락의 번데기에는 비단을 뽑던 손길, 뽕잎 향기, 빗소리 같은 누에의 숨결, 그리고 가족을 살리던 농가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작은 생명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고소한 맛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