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에서

by 비움과 채움

앞집 할머니께서 화분의 분갈이를 하고 계셨다. 작은 화분들은 이미 새 흙을 받아 단정히 자리를 하셨는데, 큰 화분 몇 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흙이 묻은 손으로 허리를 펴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에는 말없이 건네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내 말이 끝나자 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화분 속 나무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철쭉나무, 라일락, 영산홍, 블루베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나무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무를 들어 올렸다. 화분의 흙을 바닥에 쏟아 놓자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좁은 화분 속에서 더 뻗어나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서로 기대고 부딪히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 같았다.


뿌리를 살살 풀어 새 화분에 옮겨 심고 흙을 덮어주자 나무들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마치 숨을 깊이 들이마신 사람처럼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허리를 펴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니 키 큰 목련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봉오리가 제법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무 기척 없이 잠들어 있던 나무가 어느새 봄의 기척을 알아채고 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식물은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난 뒤 따뜻해진 공기와 길어진 햇빛을 감지하면 다시 생장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움튼 꽃눈은 곧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를 부르고, 수정을 거쳐 열매를 맺는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은 그 꽃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출 것이다. 꽃향기를 맡으며 마음속 불안을 내려놓고, 작지만 분명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위로는 이처럼 언제나 조용하고도 깊다.


고장 한 번 없이 돌아가는 자연의 시계는 참으로 놀랍다. 누가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도 나무는 계절을 기억하고, 꽃이 필 때를 알고 피어난다.


할머니가 분갈이한 화분의 꽃들도 머지않아 꽃을 피울 것이다. 작은 화분 안에서 새로 자리를 잡은 뿌리들이 흙을 붙잡고 힘을 모으면, 어느 날 사방으로 향기를 퍼뜨리며 봄을 알릴 것이리라.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흙이 뒤집히고, 뿌리가 풀리고,

잠들어 있던 생명이 조용히 숨을 고르는 순간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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