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하지절에

하지, 가장 긴 낮의 바람 속에서

by 비움과 채움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는 날, 하지.

하늘을 가장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날이지만, 정작 땅을 걱정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는 하절기의 정점에 서 있는 날이자, 겨울의 동지처럼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다.


예로부터 농부들은 이 시기를 무척이나 중하게 여겼다. 모내기를 마친 논이 마르지 않도록 하늘에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비가 내리길 바라면서도, 그 비가 너무 과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마음.

자연과 맞닿은 삶은 늘 그렇게 균형을 바라는 기도의 연속이었다.


올해는 장마가 예정보다 일찍 시작된다고 한다.

가뭄 걱정은 덜었지만, 이제는 집중호우가 또 다른 걱정거리다.

어느 해에는 메마른 대지에 갈라진 논바닥을 보고 애타했고, 또 어느 해에는 넘쳐나는 물에 종자가 떠내려갈까 노심초사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양면의 얼굴을 내보인다.


하지는 그런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날인지도 모른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이 시기, 기운도 극에 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 그 절정을 넘기면 서서히 다시 낮아진다는 이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하지의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멈춰 생각하게 된다.

지금이 가장 강렬한 순간이라면, 이제부터는 차분히 내려갈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올 하지를 전후해

비도 바람도 모두 적당하고,

하늘은 고요히 흐르며,

들판은 풍요롭게 자라나는

그런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태양이 가장 높은 날,

그 햇살 아래 우리가 바라는 건

지나친 뜨거움이 아니라,

적당히 따뜻한 하루하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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