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균형의 미학
세상은 갈수록 시끄러워진다.
소셜 미디어는 감정을 즉시 드러내길 강요하고,
인간관계는 숫자와 알림으로 과잉 연결되어 있다.
가진 것이 곧 존재의 무게를 증명하는 듯, 소비는 일상이 되고
말은 넘치고, 감정은 통제되지 않은 채 흘러나온다.
그런 시대 속에서,
문득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사자성어 하나가 있다.
억양소렴(抑揚疏廉).
억제할 것은 억제하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되,
불필요한 인연은 멀리하고,
청렴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라.
이 말은 단순한 유학적 덕목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감정은 숨기면 병이 되지만,
쏟아내면 관계를 해친다.
억제와 표현, 그 사이의 균형은 결국
‘언제 말할 것인가,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내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또한, 모든 관계가 소중하진 않다.
잘 맺는 것만큼이나
잘 거리를 두는 법도 중요하다.
가깝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멀어졌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소疏는 ‘끊는다’가 아니라,
‘숨 쉴 틈을 둔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청렴과 검소함.
여기서의 렴廉은 단지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서
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 핵심에 집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한 삶,
그것이 렴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억양소렴은 말하자면,
‘내 삶을 누가 아닌, 내가 다스리는 법’에 관한 지혜다.
덜 말하고, 덜 가지며, 덜 얽히는 삶이
때론 더 단단하고 평화롭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억양소렴을 배우는 수련생이다.
세상을 적당히 조절하고,
감정을 적당히 내려놓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조용히 나 자신에게로 수렴해 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길이,
내가 바라던 삶의 중심으로 가는 가장 단순하고 단단한 길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