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 우물가, 그리고 스마트폰
오늘, 출근길에 문득 앞집 할머니네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고무통에 심어 기르시던 앵두나무가
이른 봄날엔 하얀 꽃을 뽐내며 봄의 정점을 알리더니,
오늘 보니 초록잎 사이로 빨간 앵두가 조롱조롱 맺혀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그 앵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로 훌쩍 돌아가 버렸다.
어릴 적, 우리 집 뒤란 우물가에도
앵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이맘때쯤이면 우물가로 가 앵두를 한 움큼씩 따 먹곤 했다.
그 시절의 앵두는 새콤하고, 때로는 너무 시어서
찡그린 표정이 먼저 나왔지만
그마저도 입안 가득히 봄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때 누님이 자주 부르시던 노래가 생각난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 노래는 시골 처녀들이 우물가에 모여
서울에서 내려온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미지의 도시 서울에 대한 동경을 키우며
무작정 상경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우물가는
단순히 물을 긷는 곳이 아니라
정보가 모이고, 꿈이 피어나는
작은 마을의 소셜 플랫폼이었다.
지금의 스마트폰과도 닮았다.
누구든 그 앞에만 서면 세상과 연결되고,
무언가를 얻고, 누군가는 떠날 결심을 한다.
우물가가 사라진 자리에 스마트폰이 생긴 것이다.
모양은 바뀌었지만,
그곳에 모이는 마음의 본질은 여전하다.
오늘 아침, 빨갛게 맺힌 앵두 몇 알이
내 마음을 어릴 적 우리 집 뒤란의 우물가로 데려다주었다.
세상이 많이 변해도,
그 작은 열매 하나에 담긴 시간의 맛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