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꽃

동자꽃, 기다림으로 피어난 전설

by 비움과 채움

요즘은 동자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초여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깊은 산을 오르다 보면 선연한 주황빛이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지리산 자락이나 곰배령 길목에서 만나는 그 꽃은 마치 기다림을 품은 듯, 깊고도 짙은 빛을 머금고 서 있습니다.


동자꽃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아닙니다. 길가나 마당 한편에서 쉽게 마주치는 들꽃과는 다릅니다. 산을 올라야 하고, 다소 외진 길을 걸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조용히, 고요히 피어 있는 동자꽃은 마치 어떤 사연을 간직한 듯 보입니다.


그 이름에도 깊은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 인조 때, 설악산 마등령 자락 백담사 부근의 작은 암자. 관음암이라 불리던 그곳에, 다섯 살 동자승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잠시 암자를 떠난 사이, 동자승은 혹한의 겨울을 홀로 견디며 돌아올 스님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끝내 기다림이 목숨을 다했고, 사람들은 그의 고귀한 마음을 기려 암자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채봉 작가는 동화 『오세암』을 썼고, 그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렸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동자승이 고이 묻힌 자리에서 이듬해 여름, 그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주황색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꽃이 동자승의 넋이 피어난 것이라 여겼고, 그래서 그 꽃을 ‘동자꽃’이라 불렀습니다.


동자꽃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꽃입니다. 누구도 쉽게 찾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스님을 향한 동자승의 순결한 마음을 닮았습니다. 그 잎은 가운데가 오목하고, 꽃잎 하나하나가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동자꽃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집니다.


산은 늘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산에 피어나는 꽃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여름, 나도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찾아야겠습니다. 동자꽃 한 송이 앞에 서서, 한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운 일인지 다시금 되새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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