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이 사라져 가는 사회

친척이 사라져 가는 사회, 그 빈자리

by 비움과 채움

집안의 큰일이 있어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

9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나이 차이는 무려 25년.

아버지께서 사촌형과 함께 자랐다는 이야기는,

지금 세대에겐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내게는 아버지뻘인 조카가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같은 분이 나를 ‘할아버지’라 부를 때면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괜한 이유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친조카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어머니 쪽은 형제가 많았다.

외종사촌들과는 나이 차가 거의 없어

촌수를 잊고 친구처럼 지냈다.

함께 뛰놀고, 비밀을 나누고, 사소한 일에도 웃음꽃을 피웠던

그 시절의 사촌들은, 나에겐 형제 그 이상이었다.


이번 집안일로 다시 만난 친척들 중에는 그 외종사촌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고,

잊고 지냈던 추억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던 순간들 속에서,

그때의 정과 온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대화는 곧, 오늘날의 현실로 옮겨갔다.

형제가 줄고, 사촌이 사라진 사회.

고모와 이모가 없는 사회.

다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형제도, 사촌도 없는 아이들은

‘친척’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명절에 모일 친척이 없고,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서 부둥켜안을 친척이 없는 사회.

그들은 가족을 ‘부모와 나, 그리고 배우자’로만 한정 지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 형제와 사촌, 고모와 이모는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공동체였다.

서로의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덜어주며,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 자랐다.

그 속에서 ‘정’이라는 단어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관계망은 해체되고 있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만들어낸 빈자리에는

정 대신 고립이, 웃음 대신 침묵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친척이 없는 사회’

이 변화는 과연 진보일까, 아니면 상실일까?

가족의 울타리가 점점 좁아지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정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 더 외롭고 차가운 사회일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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