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오르다

설악에 안겨서

by 비움과 채움

그저께, 오색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로 삼아 설악산에 올랐다.

6월 초순의 햇살이 따가웠지만, 설악폭포의 찬물에 무릎을 식히니 다시금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대청봉을 향해 맨발로 올랐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몸 안에 쌓였던 피로와 노폐물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초록 숲이 바람에 출렁이고

새들은 지저귀며, 다람쥐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응원을 보낸다.

그 덕에 가볍게 1,708m의 정상석을 안았다.

수없이 올랐던 설악산이지만, 여전히 가슴은 벅차오른다.

설악이란 참으로 묘한 끌림이다.


십대 시절 처음 설악을 접하고 바로 반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오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매번 새로운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니, 내게 이곳은 단순한 산이 아닌 특별한 존재다.

수십 년간 설악의 사계를 품어왔기에, 눈을 감아도 그 모습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정상을 뒤로하고 중청산장으로 내려왔다.

현재는 공사 중인 이 산장은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작년, 오색케이블카 공사 착공 소식을 접했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취소되던 사업이었지만, 가까스로 다시 추진되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이 또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때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의 논쟁이 떠오른다.

그 친구가 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하며 거품을 물 듯 열을 올릴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넌 건강하니까 오르고 싶을 때 언제든 올라 설악의 비경에 취할 수 있지만,

네 아버지가 설악의 경치를 보고 싶어 하신다면,

네가 업고서라도 이곳에 모셔와야 하지 않겠니?

케이블카가 놓에 진다면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들도 설악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을텐데? 명분없는 반대에 반대를 하는 너희 단체가 진정 국기를 위해서 투쟁할까?”


나는 유럽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수없이 많은 케이블카, 산악열차, 푸니쿨라들을 보아왔다.

그 나라들은 100여 년 전부터 산악지형을 이용한 인프라를 구축해왔고, 오늘날 그틀 국가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지 않은가.

환경이 무너졌는가?

동물들이 사라졌는가? 아니다.

그들은 자연과 공존하며 편의와 경제를 함께 끌어올렸다.


개인적으로, 설악산 중청봉에 4성급 호텔이 들어서고

오색, 백담사, 설악동에서 중청봉까지 케이블카가 연결된다면

이곳 설악산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돋움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로 인해 생겨날 일자리와 지역 경제의 활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청산장의 공사 개요를 보면 아쉬움이 앞선다.

숙박 기능은 사라지고, 위급 시 대피 공간으로 기능을 축소한다니,

그간의 추억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탐방각들의 편이 아니다.

그들의 관리와 운영 편의성을 위해 탐방객들에게 제공하여야할 서비스를 축소하기에 급급한것 같다.

낙하산이 이닌 탐방객들의 생각을 읽는 진정한 행정가가 나타나 이 모순들을 뜯어 고쳐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청산장으로 향하는 길.

시원한 바람과 맑은 시계 덕분에

울산바위,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 봉정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비탐로(탐방 비허용 구간)가 없었던 시절엔

설악의 숨은 절경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구간이 '출입금지' 팻말로 막혀 있어

그곳을 걷는 순간 범법자가 되어버린다.


설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면,

이러한 규제에 대한 불만은 어김없이 쏟아진다.


소청산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 즈음,

서녘 하늘은 붉게 타오르며 일몰의 절정을 선사했다.

식사도 잊은 채, 모두가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어둠이 산장을 덮었다.


맛있는 저녁.

한 잔 술이 간절하다.

하지만 국립공원 내에서는 음주가 금지다.

이처럼 철저하게 통제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좋은 경치에 맛있는 음식, 거기에 술 한 잔까지 곁들여졌다면

산신령님도 내려와 합석하셨을지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지정된 칸으로 돌아와 몸을 눕힌다.

이내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9시 소등.

그렇게 꿀잠의 나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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