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중위권 성적을 가지고도
타 지역 명문고로 진학할 때
나는 가정형편상 학비 면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집 근처 고등학교를 다녔다
월 10만원이라는 통학비조차 없어
선망하던 고등학교를 포기했지만
내가 처한 환경에서 최고가 되자- 마음 먹었을 뿐
서럽지않았다
비록 문제집 한 권 살 돈이 없어서
남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책들을 주워다 썼지만
비교적 깨끗한 책 한 권이 수중에 들어올 때면
밥을 먹지않아도 배부른 듯 흐뭇했다
이를 딱하게 보신 선생님께서 교사용 책을 한아름 안겨주셨던 고마운 기억도 지금껏 남아있다
사교육없이도 내가 공부에 매진하는 만큼
성적이 나와줘서
시험 스트레스가 크긴 해도 성적표가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했다
내 노력의 결실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목표를 향해 순수한 열정 하나로 내달렸던 시기가 이 때말고 또 있었나 싶다
항상 당당했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오늘의 고단함도 웃음으로 넘기며 살았는데...
그러다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가게 된 사관학교
내 꿈, 내 목표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된 시점
생도의 제복이 주는 품위와 절제미에
사람들은 동경해 마지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관심없었던 사람이
그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그 제복에 걸맞는 사람으로 재탄생되는 그 과정은 정말 처절했다
4년간의 생도생활으로 만들어진 나는
철저히 국가에 충성하고
철저히 군법을 따르는 군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장교를 양성하는 특수 교육기관의 성공적인 교육 훈련 결과라 할 수 있겠으나
자유의지가 박탈된 인간으로 살면서
날마다 끝 간데없는 우울과 싸워야했고
숨죽여 울어야했다
군인으로서의 본분에는 충실했지만
잠시의 휴식이 찾아오면 산산조각 나버린
나 자신을 수습하지 못해
차라리 극기훈련을 쉼없이 받았으면 하고 바랐다
생도 정복을 입고 학교 정문을 나서면
언제든 도처에서 감시의 눈초리가 느껴졌고,
연예인 혹은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행인들이 너무 신경쓰였다
생도가 지켜야할 규율이
정말 숨 막히게 많기도 했고
난 왜 쓸데없이 지나치게 FM을 고집해서
피곤한 인생을 자처하는지ㅉㅉ
이제는 내가 생도였는지 장교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설사 안다고한들 하등의 관심이 없어보이는데
현관을 나서기 두려워지는 순간이
아직까지도 가끔 있다
하아... 내 자신이 정말 싫어지는 순간

오늘도 스스로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