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능력 좋고 인기 많고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들은 세상 도처에 널린 것 같은데 왜 가는 곳마다 자신이 시샘과 견제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하는지 말이다.
주희는 일단 나대는 성격이 아니었다. 인기가 많아서 감투를 쓰는 자리에 추대되는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은근슬쩍 등 떠밀려 전면에 나서게 되는 일이 많았을 뿐. 사소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되는 예기치 않은 부분에서 입방아에 오르는 일이 잦았기에 자신의 지난 삶은 늘 의문투성이었다.
또 이번엔 나의 어떤 부분들이 저 사람들 심기를 건드렸을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행동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속속들이 잘 아는 소수의 최측근들은 이런 주희의 사정을 참 딱해했지만 섣불리 이 상황에 대해 잘못 발설했다간, 다른 사람들이 아닌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기 딱 좋았다.
수도 없이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경쟁 구도가 잡힐라 치면 주희는 가장 먼저 발을 빼기 바빴고, 자기의 허물을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 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직장 생활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사회인으로서는 사실상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안고 처절하게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숨기고 살아가는 와중인데 동료들 앞에서 내 직속도 아닌 상사가 난데없이 나타나 내 공훈을 치하하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질 않나,
결국은 뜬소문으로 끝나고 말 이야기들의 주요 인물로 도마에 올려졌지만 아무도 수습해주질 않아 나 홀로 이미지 훼손만 당하질 않나, 마지못해 준비한 사내 직원 역량 평가에서 예정에 없던 수상까지 하는 바람에 동료들의 겉과 속이 다른 태도로 심적 고통이 배가되질 않나...
안 그래도 가시방석인 자신의 자리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뢰밭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 정도면 주희 스스로도 자신한테 뭔가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무엇이 사람들의 아드레날린을 폭발하게 만드는 걸까,
나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세로토닌이고 싶은데...
도무지 조직 생활은 체질에 안 맞다 싶어 사직서를 쓰긴 써야겠다는 생각이 공고해진 목요일 밤.
주희는 착잡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인 건 전생 극장이 응답하고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
전생 상영관을 다시 찾아주신 주희 님을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궁금해했던 발자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중세 말기 유럽 상업 도시로 지금 출발합니다.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경쟁과 견제의 대상이 되었던
남성 상인 '레오나르도'가 등장합니다.
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번성하는 상업 도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수완과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공 가도를 달린 상인 레오나르도(Leonardo)의 인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강한 독립심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자를 압도하는 데 능숙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가장 큰 업(業, 카르마)은
그는 동업자들의 자본이나 핵심 무역 경로 정보를 빼앗아 홀로 독점적인 이익을 취했습니다. 계약 이행 직전에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파트너의 이익을 가로채 그들을 몰락시키기 일쑤였죠. 자신과 비슷한 재능을 가진 신흥 상인이나 경쟁자들이 나타나면 그는 지역 조합(Guild)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하거나, 거짓 정보를 흘려 신용을 실추시켜 파멸시켰습니다.
자신의 부와 성공을 끊임없이 과시하며 동료 상인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로 인해 주변에 강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뿌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가 성공할수록 그를 향한 시기와 적의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는 상업 조합 내에서 끊임없는 모함과 고소에 시달렸고 암암리에 그의 무역을 방해하는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결국 그는 평생을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한 투쟁 속에서 살았고 단 한 명의 진심 어린 조력자 없이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가 전생에 '빼앗고, 배척하고, 고립시킨' 업보는 현생에 부메랑이 되어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현생의 주인공인 주희 님은 전생의 습이 그대로 이어져 여전히 주체성이 강하고 능력이 있지만 조직 생활을 할 때마다, 전생에 그에게 피해를 보았던 영혼들이 동료, 상사, 경쟁자로 윤회하여 당신의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에게 견제와 시기 질투를 퍼붓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죠.
주희 님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방의 동료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고독하게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주희 님이 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한 독립심을 독선이 아닌 포용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경쟁자를 적으로 보지 않고 협력하고 이익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성과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자세를 취할 때 전생의 업보가 해소되어 주변의 기운이 돕는 순조로운 운명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궁금증이 다 해결되셨나요?
다음에 또 다른 상영관에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대체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툭하면 시기와 질투를 받고 뭘 해도 사람들로부터 뒷말을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억울함이 상당 부분 씻긴 듯했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해서 미워하는 무리로부터 자꾸 멀어지고 도망가는 연습을 할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분위기를 바꿔야겠구나! 이제부턴 도망자와 추격자 구도가 아니라 사람들한테 내가 먼저 다가서는 연습, 내가 꽁꽁 싸안고 있었던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주변에 나눠야겠구나!
이걸 깨닫는 순간 주희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주희는 일단 사직서 쓸 생각은 접어두고 오늘부터 작전을 개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