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앞에 성별 구분은 무의미

by 해요


나는 학창시절 이성교제 자체가 탈선이라 생각했던 엄청난 답답이었는데

열 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소름끼치게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별 거 아닌 걸로 치부한다면 나에겐 더 큰 상처ㅠ)


내가 중학교 1학년,

혼자 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 뒷 편에는 고등학생 오빠들이

여럿 모여있는게 보여서

중간 쯤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그 중 두 명이 가까이 다가섰지만

난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신경하게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한 번은

손으로 내 엉덩이를 만지는 듯 했다

'에이 설마~아닐거야~' 하고 애써 부정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에 슬그머니 한발짝 옆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포위망을 좁혀오더니 뭔가가

(손이 아닌...)

내 엉덩이에 밀착해 비비는게 아닌가

불쾌감이란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분나쁨


sticker sticker


난 소름 끼치고 겁에 질려 몸을 이리저리 피해보고 자리도 옮겨봤지만 소용없었다

다소 번잡한 버스 안이었지만 주변에는 온통 남고생 밖에 보이지 않았고

생전 처음 경험하는 충격과 경악스런 상황에 얼어붙고 말았다


간신히 버스에서 탈출하던 순간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잠시잠깐의 추행에 이렇게 수치스럽고 굴욕과 모욕감에 압도되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순간-

순수한 내 영혼이 더렵혀진 기분


그 이후 버스를 탈 때마다 무서워서

책가방을 손에 들지 않았고

어깨에 맨 상태에서 최대한 길이를 늘리고 늘려 엉덩이를 가리고 다녀야만 했다


다행히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지만

몇 년이 흘러 이번엔 중, 고등학교 남자 선생님들의 행태가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개인 면담 시간에 능글능글한 눈길로 위 아래를 훑는가하면

교복 매무새를 자기 손으로 고쳐주는 척하며 은근슬쩍 툭툭 치고 팔뚝을 주무르고...


동네 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의 성추행


군대가서는 병사들도 있는데서

"아유~ 발육이 남다르네~"

이딴 멍멍이 소리나 듣고...

(더이상 개에 대해 모독하는 일 없길)


지난 역사 속 여자란 존재는

일방적인 약자이자 피해자였고

무슨 일을 당하든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표면적으로는 양성 평등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도기를 겪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도구, 노리개로 생각하는 일부의 미개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요즘 함무라비 정신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남자들에게 당한 걸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윽박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는 걸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심심찮게 보게된다


현실세계에서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말과 행동인데,

방송의 힘을 빌려 눈 앞에서 실현시켜주니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은 줄은 알지만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당해도 싸다 싸"

이런 식으로

똑같이 저열한 수준으로 상대한다는

불쾌감이 앞선다


"무슨 개그를 다큐로 받냐~"

이렇게 따지고 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순수예술도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하는 법인데

하물며 아무나 보는

대중매체에서 그러면 어떡하나

이렇게 사서 걱정하는 것도 병이지 싶다


난 그저 남녀노소 불문하고

차별과 강압,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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