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난 혹한 속에서 연병장을 구르며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졸업의 기쁨을 누릴 기회마저도 빼앗겼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었나보다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던 날도
그 당시가 갑자기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니-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세월만도 10년 이상.
돌아가면 그동안 같이 못해서 아쉬웠던 일 하나씩 해나가면서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여행도 하고
그렇게 내 인생 제 2막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19세에 집을 떠나 30대가 되어 집에 들어온 딸이
우리 엄마는 너무도 걱정되셨나보다
집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한숨은 늘어만갔다
결국 참다못해 취업에 대한 압박을-
자식 걱정이 되서 그러시는 엄마의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당분간은 모든걸 잊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했던 내 입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보름만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취업을 목표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동안의 저축금과 퇴직금을 다 합쳐도
서울와서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란 걸 일단 몸으로 느껴야했고
월세든 전세든 일단 살 곳을 구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어서
급한대로 고시원에 들어갔다
원룸 전셋집을 구하면 바로 탈출할 생각이었지만
쉽사리 방은 구해지지 않았고 고시원에서 한 달 이상을 살게 되었다
한 달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창문도 없고
햇볕도 전혀 들지 않고
170이 넘는 내 키에는 침대 매트리스도 짧아 다리를 쭉 뻗을 수 없었고
춥기도 엄청 춥고
숨막히게 좁았다
무엇보다 내 앞에 놓인 현실의 막막함에 질식할 지경...
갑갑한 방 안에 우두커니 있다보면
걱정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대로 가다간 서서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지금도 보금자리를 가족한테마저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창고같은 열악한 오피스텔 원룸에서 살고 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현재에 불평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빠가 건축,인테리어 분야에선 슈퍼맨이신데도 불구하고 남편 입장을 생각해서 SOS를 칠 수 없다는...
괜히 근심거리 안겨드릴 필요 뭐 있나. 우리가 책임질 일이지 )

내가 처음부터 욕심을 너무 버리다보니
마지노선이 말도 안되게 바닥을 친 건 아닌가...
욕심을 부릴 땐 부려야하는 거였나...
이런 생각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면
이 때가 내 안의 죽비를 드는 타이밍
허튼 생각 하지마~
퍽퍽퍽!
누추하지만 어찌되었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있으니
비록 지금 당장 '신혼집 인테리어' 이런건 꿈도 못 꾸더라도
언젠가는 형편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면서-
그래도 마음맞는 영원한 내 편과 함께
조금씩 형편을 업그레이드 해나간다면
그게 행복이지 않을까
(다운그레이드만 안되도 사실 다행아닌가)
뭔 걱정을 그렇게나 많이 하고 살았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