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구두
내가 구두를 닦기 시작한 역사는
군대 시절이 아닌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점에서 출발한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빠는
늘 바쁘시지만 항상 청결하고
대체로 수트 차림에 영국 신사같은 풍모를 자랑하셨다
운 좋게 아빠가 출근하시기 전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현관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아빠의 구두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
난 그 일이 그렇게도 기분 좋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한 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비록 고사리같은 손이었지만
아빠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정성스레 닦기 시작한 경험 또한
적잖이 쌓이다보니
구두 닦는 실력만큼은
가히 남부럽지 않을 수준이 된 건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다
지금은 비록
아빠의 구두도
남편의 구두도
닦을 일이 없어
구두닦이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버렸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의 고단한 발을
쓰다듬고 주물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