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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May 24. 2016

구두닦이 소녀

아빠의 구두



내가 구두를 닦기 시작한 역사는

군대 시절이 아닌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점에서 출발한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빠는

늘 바쁘시지만 항상 청결하고

대체로 수트 차림에 영국 신사같은 풍모를 자랑하셨다


운 좋게 아빠가 출근하시기 전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현관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아빠의 구두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


난 그 일이 그렇게도 기분 좋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한 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비록 고사리같은 손이었지만

아빠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정성스레 닦기 시작한 경험 또한

 적잖이 쌓이다보니

구두 닦는 실력만큼은

가히 남부럽지 않을 수준이 된 건

덤으로 얻은 즐거이다


지금은 비록

아빠의 구두도

남편의 구두도

닦을 일이 없어

구두닦이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버렸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의 고단한 발을

쓰다듬고 주물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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