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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너 Feb 29. 2024

영혼의 집-이사벨 아옌데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외국 소설-특히나 고전-을 읽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습니다. 


 일단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가 책을 읽는 나와 일면식도 없을 때.. 가 왕왕 있을 것이고요. 


제 경험을 반추해 볼께요.


나이지리아가 배경인 '신의 화살'이라는 소설이 있거든요.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모두 '아자차카페테헤네'의 기출변형 입니다.

그러다 보니 얘랑 쟤랑 걔랑 구별이 어려워요. 

러시아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말이죠. <-여기도 난감하죠 ㅋㅋㅋ

그런데 심지어 이 인물들이 겁나 몰려 살거든요.

부족 집단이라 대가 함께하고 난리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놓고 인물 간 관계가 알 깐 듯 계속 쏟아지기 시작하면.

거의 종이에 써놓고 봐야 하는 지경이었어요 흑흑. 여담이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읽었던 작품입니다.   


'신의 화살' 받고 더 독한 놈(?)이 하나 더 있는데요. 

재작년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이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거의 아는 바 없는 민족의 처음 접하는 역사이다 보니 감 잡는 데만 책의 절반을 할애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도저히 안 되어 그 동네 역사를 유튜브로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방금 말씀드린 낯섦은 몰입도 방해하고 이해도 방해하고.. 여러모로 쉬운 상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 낯섦이란 것이 고전 읽기의 가장 큰 산은 아니에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낯섦이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동화되어 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해서요. 

재밌는 소설 하나 몰입해서 잘 읽으면 그 작품이 타겟팅한 시대적 배경 정도는 대략 꿰어지는 개이득(..)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학'이란 장르적 특성에 기대서 생각해 보자면. 낯섦은 정말 별 것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요. 

결국 이 장르의 정체성은 밀도감 높은 인간의 '정서'이고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사람들을 갖다 놔도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걔네가 느끼는 바 = 오늘날의 우리가 느끼는 바. ㅇㅇ 거기서 거기.. 그 밥에 그 나물.. 위아더월드.

 

 문학이 목표 삼은 과녁(?)인 '인간'과 그것을 탐(?)하는 프로(?)들이 쓴  작품의 합은  

시대든 지리든 언어든 모든 걸 차치하고 독자의 가슴날아가 꽂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무엇이 제일 문제냐. 


제가 느낀 바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번역의 문제입니다. 


어긋난 번역만큼 완독을 어렵게 만드는 게 없는데요. 제가 유달리 신경과민 환자처럼 번역에 ㅈㄹㅈㄹ거리는 경향이 있긴 한데. (인정)


번역의 유창성 같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닌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앞뒤 술어 정도는 호응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울먹) 뭐든 적당히 읽을만하면 말을 안 하는데요. 번역한 문장이 '정말로' 이해가 돼서. (울먹)


이 문장 나만 이상하냐고요


생각보다 번역이 버려버린(?) 소설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장에 마침표만 찍었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야(이꽉물).


그리고 이렇게 발번역이 되는 대개의 경우가 (큰 출판사에서 나오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직역의 맛을 너무나 과도하게 살려버린 것 때문인데요. 교수님들은 이런 번역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지만. 


 저같이 한국말만 유창한 토종 네이티브 오리지날 원주민 스피커는 기차처럼 길게 이어진 원문을 그대로 이어서 한 문장으로 때려박으면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질 못합니다. (제발 이런 번역해지마여ㅠㅠㅠㅠ) 


 그래서 고전 소설을 읽을 때는 리뷰를 자세히 보고는 해요. 번역에 대해서 누군가가 한 마디라도 블라블라 거리는 경우가 있다, 하면 패쓰합니다.  저만큼 번역으로 오바육바떠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자기고백)


 그래서 제가 이 번역 괜찮다, 하면 읽을 때 무리 없을 것이라는 건 자신해요. 

물론.. 전문가의 입장으로 번역이 매끄럽고 잘됐다, 까지는 논할 수 없습니다. 


 단지 코리아 네이티브인 제가 같은 처지(?)일 것이라 짐작되는 다수의 기준을 살펴보는 것이고요. 

그런 고로 읽기 편해야 하는 것이 번역을 바라보는 원오브코리아독자인 저의 제1조건입니다. 

문장에 외국 언어 특유의 이물감이 느껴지면 좋은 번역이라고 보지 않아요. 


 문장에 이물감을 없애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러므로 잘 다듬어진 문장으로 쓰인 책들은 번역가님이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이셨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외국의 언어 -> 한국어의 변모 과정이 절대로 쉽고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로.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인 


 칠레의 작가가 쓴 것이라 들었습니다. 



이 책은 소설 전체도 구성이 잘 잡혀있는, 무척 잘 짜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번역가님께 감사부터 드리고 시작하겠어요.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읽는 내내 걸리는 문장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와아... 번역에 감동해서 내내 입틀막 하며 읽었네요.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깔끔해요. 번역된 문장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쾌남력에 질식할 뻔. ㅋㅋㅋㅋㅋ


 문장이 좋으면 물 흐르듯 읽히기도 하고. 

이렇게 유려하게 소설이 읽히는 경험 자체가 취미 생활(=독서)의 질을 올려준다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에요. 거기다 소설 자체의 균형감도 좋습니다. 


 관련한 더 많은 수다를 떨고 싶지만. 


 우선은 번역이 무척 잘 되어 있으니 읽기 쉬우실 것이란 말부터 전해봅니다. 

저처럼 외국 소설에 다가갈 때마다 번역 때문에 모험(?)을 하시는 분들께. 

이 작품은 그럴 필요 없는 책임을 밝히며.. 가보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오늘도 대반상고.







+) 물론 읽다가 문장 때문에 출판이 어떻게 되었는지 신기한 책들을 만나지만요. 

재미있으면 어뜨케어뜨케든 기세로 읽어내긴 합니다. 


대표적인 것 최근 읽은 '트러스트'.........진짜..속 답답해 죽겠지만...더 이상 말하지 않겠서여.... 좋은 소설 이렇게 망치지 맙시다 증말...(이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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