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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사람

드디어 도래한 포스트-예소리즘

by 제일제문소

요즘의 나는 걸음걸이는 파워워킹인데 눈으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꾸 살피는 그런 모습이다. 표현이 좀 웃기긴 하지만 하체는 결심을 하고 무지성으로 나아가는데, 상체가 아직 살아온 쪼를 잊지 못한달까. 종종걸음을 걷지 않는 것만으로도 셀프 칭찬을 좀 해주고 싶긴 하지만 '어우 나 근데 이거 맞아?'하고 너무 앞뒤를 살피고 있어서 '니가 그럼 그렇지' 싶기도 하다. 말이 파워워킹이긴 하나 사실 ‘파워’의 근원이 될 만한 대단한 성과나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의 보폭이 예전보다는 훨씬 커진 느낌이 있다. 웃긴 것은 이렇게 느끼면서도 자꾸 두리번거리는 거다. '내가 당장 뭔가 책임질 게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 '벌어놓은 걸 까먹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등등 의심하고 보는 거다.


의심의 시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다. 저렇게 생각하다가 만다. '생각한들 뭐가 달라지냐'하고 생각의 스위치를 끄는 정도가 아니고 두꺼비집을 아예 내려버린다. 그래서 무지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단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아도 별일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예전의 나는 끝끝내 의심하고, 생각을 끌로 파는 그 과정을 변태처럼 좀 즐겼던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중2병이나 헤어짐의 슬픔에 취해 SNS에 뻘소리를 가득 써놓는 20대처럼. 다 기력이 좋아서 그렇다.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견뎌내고, 며칠 안에 그걸 다시 충전할 수 있어서 그랬다. 생각이 많았던 나는 나의 얄팍한, 빵 구울 때 쓰는 종이호일만도 못한 지성에 취해서 그랬던 것 같다. 충분히 생각한다는 핑계로 고민을 많이 하면 좋은 결론이 나올 줄 알았지. 뭐.


거듭 말하지만 지금 나에게 뭔가 대단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데 나는 요즘 이상하게 마음이 참 편하고, 그러다 보니 뭐든 좀 고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별로 밉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고, 이해도 되고, 어찌어찌하면 다 될 것 같기도 하고. 분명 과거 종이호일..아니 생각을 많이 하던 나라면 지금 상황에서 조금 미쳐 날뛰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멀쩡하지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잘 살아도 지랄이다. 그치. 그리고 더 웃긴 건, 그동안에도 몰랐던 것은 아닌데 고마운 일들, 고마운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고, 진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체감이 다르다.


주어진 하루하루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대사처럼 희망의 '초콜렛 상자' 같은 느낌은 아니고, 매일 시험지를 한 장씩 받아 드는 느낌이다. 시험이다 보니 긴장은 좀 되는데 예전에는 10문제 중에 7개를 몰랐다면 이제는 한 3-4개 정도만 모르는 느낌? 그래서 좀 기분이 좋고, 나 스스로가 우리 반에서 1등이 아니라는 자각이 있는 상태라 60점 받아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은 기분이다. 가끔은 이 정도 기분에도 감지덕지하는 나를 보며 도대체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지 하는 연민이 슬금슬금 올라올 때도 있다. 얼마 전까지의 나였으면 아마 과거의 나를 안쓰러워하고 무언가를 조금은 원망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지금을 포스트-예소리즘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선택들로 만들어졌을 거고,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부정한다고 그게 되겠나. 그리고 그때 뭐든 열심히 해둔 덕에 지금의 내가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스스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오곤 했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조금 담백해진 걸까. 과거와 이어진 감정적 연결고리들을 내 손으로 툭툭 잘라내게 된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는데 누굴 원망하니'의 맥락보다는 '그래. 충분히 고생했고 애썼다. 이제 다음 시즌 ㅇㅋ?' 하게 되는 거다. 불쌍한 나를 걷어내니 오히려 내가 더 잘 보인다.


기범이가 핑계고에 나와서 본인은 남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한테는 관심이 엄청 많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나도 항상 나와 지지고 볶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늘 내가 나 자신에게 박하게 굴었다고 읍소했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나에게 여행도 보내주고, 옷도 많이 사주고, 술도 많이 사주고, 가끔씩 파인다이닝도 데려가고, 비싼 운동도 시켜주고 꽤 잘해주기도 했다. 먹고 살려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았던 과정도 충분히 잘 견뎠고, 그렇게 사치를 부린 덕분에 어려운 고비들도 잘 넘겼다.


더 나이가 들어도, 또 다른 어려운 일들이 닥쳐도 좀 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나를 부양하느라 앞에 놓인 구질구질함을 어디 내다 버리지도 못하고 하나하나 씹어 삼키느라 지금의 산뜻함을 맞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빨리 말하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힘주어 말하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사랑도 많고 표현도 잘하는 그런 사람. 그리고 너무 절절하지 않은, 마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절절했더라도 금방 잘 털어내는 사람. 요 며칠 봄꽃이 지고 그 자리에 피어난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는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몇 번 못 입고 드라이 맡기는 게 아까워서 맨날 입을까 말까 고민만 했던 드로잉넘버스 흰 자켓을 내일은 꺼내 입어야지.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보다 생각 안 하고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이 훠얼씬 가성비가 좋다는 걸 마흔 넘어서 깨달은 나의 봄을 좀 더 잘 누려보겠다. 남에게는 말고, 나에게는 좀 경솔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가볍게 살아도 되는 나이에 한껏 심각했으니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도 되는 지금은 딱 이 상태 그대로 지내보는 거다. 곧 장마도 찾아오고 무더위도 오겠지만, 우리 그건 그때 생각하자. 이제 나는 헌터 부츠도 있고, 여름옷도 잔뜩 사놨으니까. 이대로 또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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