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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 이 마음을

김현철, 윤상, 이현우 콘서트에 다녀와서

by 제일제문소

들어는 보았는가. 노총각 4인방. 김현철, 윤상, 윤종신, 이현우 이 네 뮤지션을 노총각 4인방으로 묶어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모두 야만의 시대에 살긴 했지만 저 훌륭한 뮤지션들은 저런 저렴한 워딩으로 묶어버리다니. 아무튼 그 4인방 중에 3인방(?)께서 갑자기 방송과 유튜브에 슬금슬금 나오시더니, 공연을 한다고 한다. 종신옹은 본인 콘서트 일정 때문인지 빠졌고, 광진님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온 덕분에 의외로 현철오라버니의 무대를 가장 최근에 보았고, 이현우 선생님은...네, 초면입니다. 그리고 내 심장을 울리는 단 하나의 이름, 윤상. 사실 오빠의 단독공연이라면 나는 이미 티켓 오픈 첫날 달려들어 어떻게든 앞자리를 사수했겠지만 이번에는 약-간 고민이 되었다. 물론 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가득하겠으나 나도 또 먹고살기 바쁜 소시민 휀걸인지라(..^^) 첫공 당일까지도 고민하다가 둘째 날(이자 막공) 아침에 한 자리를 잡아서 다녀왔다.


공연을 갈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는 사실 아침마다 듣는 MBC 라디오 <오늘 아침, 윤상입니다>에서 들리는 오빠 목소리의 컨디션이 영 안 좋아서도 있다. 디제이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큰 무리는 없지만 '어휴 저 양반 저래가지고 노래는 하겠나(positive...걱정과 염려...그리고 사랑…)'싶은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 성대가 제일 나중에 늙는다지만 오빠의 목소리만이 줄 수 있는 그 조용한 압도감이 있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겨우겨우 버티는 모습을 보고 오고 싶지는 않았달까. 하지만 또 반대로 썽에 안 차면 숨어버리는 저 양반이, 이번에는 친구랑 형이 같이 하자고 꼬셨으니까 하지 또 언제 저렇게 무대에서 노래를 해주겠나 싶어서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는 생각에 빗길을 뚫고 공연에 다녀왔다. 공연 후기를 짤막하게 말아보자면, “오빠 아직 명창이잖아!!!!!!!! 그리고 찬영아, 아부지한테 잘해라. 너도 라이즈지만 너네 아빠도 윤상이야....”정도로 갈음하겠다.


학창 시절 나는 '유희열 좋아하는 애'로 대표되었지만 윤상의 음악에서 늘 감동을 받았다. 그가 한참 활동을 할 시기에는 내가 초등학생이라 잘 알지 못했고, 나이를 한참 먹고 나서 내가 최초로 마음 깊이 기억하는 가요이자 인생곡인 <파일럿>의 작곡가가 윤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역시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한참 이런저런 음악을 많이 들을 때는 아마 오빠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것 같고 그가 과거에 만들어둔 업적, 아니 음반들을 다시 구해 들으며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놀라고 또 놀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무슨 회귀물처럼 이 놀라움은 반복된다.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OST를 하질 않나, 러블리즈의 아버지였다가, 아이유랑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하질 않나. 물론 그중에 제일 놀란 건, 앤톤 때문에 국민 시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지만(사실 앤톤 전에 가장 놀란 건 평양 공연 대표단 수석대표로 뉴스에서 나왔을 때다. 구한말 지식인처럼 너무 멋있어서)


노래가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는 말로는 도저히 윤상의 음악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자유롭게 음악을 하는 사람도 좋지만 저렇게 스스로를 쥐 잡듯이 잡아가며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더 마음이 간다. 같이 일하면 되게 피곤할 것 같은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누가 봐도 좋은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이 음반을 낼 때마다 걱정하고(지금 요정으로 활동하는 정 모 재형),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체조경기장을 못 채울까 걱정하는 김 모 동률이라고...) 또 걱정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조금은 유치하지만 꼿꼿한 마음을 본다. 충분히 즐기고 여유 있게 하는 사람의 음악도 너무 좋을 수 있는데(이게 대충 한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나는 저 집요한 아저씨들이 차마 눈도 못 마주치며 쓱 내미는 밀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나 보다.


공연장에는 언니들이 그득했다. 이제 나도 어디 공연장에 가면 어르신 소리를 들을 법한 할미인데. 나보다 최소 5살, 최대 10살 많은 언니들이 너무 설레는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아마 오빠들이 한참 활동하던 시기에 여중생, 여고생들이 아니었을까. 나라가 쑥쑥 자라던 시기에 같이 쑥쑥 자란 소녀들이, 한창 일하고 놀아야 할 때는 IMF 때려 맞은 언니들이, 육아에 탈탈 털리고 이제 한숨 돌린 듯한 어머님들이, 50 언저리가 되어 어린 시절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이가 적든 많든 결국 사랑하는 게 많은 사람이 이긴다. 아이유도 그랬잖아. Love wins all이라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마음은 쉽게 흩어지지 않고 자그마한 불씨에도 뜨끈해진다. 포스터 촬영에서 당뇨와 혈압 얘기를 하는 오빠들도, 누가 봐도 나이 든 사람인 우리들도, 그 위에 먼지는 좀 쌓였어도 결국 마음은 그때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영화도 새로 제작되는 영화보다는 리마스터링이나 재상영이 많아지고, 나이 든 사람(=구매력이 좋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진다. 솔직히 말하면 내 나이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연령타깃이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허세가 심해서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볼 법한, 영화잡지에 나오는 있어 보이는 영화, 유희열이 매일 밤 라디오에서 추천해 주는 음악, 이런 건 읽어야 한다는 책 같은 것들을 뭔지도 모르고 내 안에 잔뜩 쓸어 담아두었다.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중년 취급받았을 내가 고령화 덕분에 중위연령도 안되다 보니 요즘 즐길 게 너무 많은 거다. 이번 공연도 어떻게 보면 '이별의 그늘'이 나왔을 때 유치원생이었던 내가 조금 이르게 잘 누릴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얼마 전 3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러브레터>를 보며 어릴 때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새롭게 느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적 허세든, 팬심이든, 호기심이든, 무언가를 많이 사랑해 놓으니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는 화로가 많아서 좋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데, 부지런히 무언가를 많이 사랑해 둔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잘 모르지만 멋있어 보여서 해둔 것도 너무 잘했다. 나이가 드니까 다 알고 느끼게 되잖아. 사실 사랑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 어릴수록 사랑하는 것이 많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다시 불을 피우는 에너지 또한 점점 줄어들 것이므로 예전만큼 가짓수가 많지는 않아도 될 거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 나를 위해서 밝은 눈으로 사랑할 대상을 찾아두는 것도 꽤 의미 있고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야 하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 글의 엔딩곡은 윤상, 김현철의 <사랑하오>다. 말로는 다 못한 이 마음을 이 노래로 대신한다.


https://youtu.be/lmxNgwBeJ44?feature=shared

윤상 4집은 의외로 명반이니 꼭 들어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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