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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업과 겁

무언가 말하고 쓰는 일

"솔삼 씨는 번역도 번역인데 글을 써보면 어때요?

물론 기본 글발이 있어서 번역도 잘할 가능성이 아주 많았지만요.


재능이 있나 내가 해도 되나 이런 고민 사실 저도 많이 했는데

이제 좀 보여요.

재능은 대체로 고만고만한 듯하고,

두려워 말고 많이 쓰면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 좋아하는 번역가 선생님의 이메일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쓰는 일은 돌아보면 늘 두렵다. 내 말과 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심초사의 순간이라도 오면 다행이다. 얼마나 많은 말과 글들이 그런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을까.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의 미숙함과 무심함이 언어라는 탈을 쓰고 칼이 되고 몽둥이가 되어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겁이 난다.


사람의 말과 글에는 태생적으로 업이 따른다. 가톨릭이지만 불교의 교리(?)에 꽤 많은 부분 공감하는 나는 이 '업'이라는 굴레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다양한 형태의 업을 쌓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쩍 말과 글로 쌓는 업이 두렵다. 사려 깊지 못한 언어들이 시간을 돌고 돌아와 결국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일을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은 아니다. 알아가는 게 많아질수록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뿐. 나는 세상사 '똔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다 값을 치른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상환해야 하는 남은 빚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추가 대출을 땡겨야 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그런 것들이 가늠이 되지 않아 좀 쫄리는 거다.


사실 빚을 추가하지 않을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이런 걸 안 하면 된다. 말도 좀 적게 하고, 일기는 일기장에...SNS는 비공개로...그러면 된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빚어진 것인지 많이 듣고 싶은 만큼 말하고 싶기도 하고, 많이 읽고 싶은 만큼 쓰고 싶기도 하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우선 되는 관종과 비판받는 게 무서운 평범한 사람의 그 중간 어디쯤에서 늘 미어캣처럼 이쪽저쪽 계속 두리번거리다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어떤 목적이 있거나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글은 여전히 자신이 없다. 아, 일에 필요한 글이라면 그 목적에 맞춰서 호다닥 써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는 글은 어찌어찌 글자 수는 맞춰도 영 마음에 안 든다. 뭔가 나를 막 어필하고 멋을 부려야 하는 글은 못쓴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애초부터 온전히 글로 먹고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번역가 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저 안부를 전했을 뿐인데 '2020년 올해의 이메일상'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답장이 왔다. 거짓말 안 하고 50번도 넘게 읽어보았다. 평소처럼 수다를 떨 듯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투가 들리는 듯했지만 나에게는 단어 하나하나가 볼드체로 보였다. 두.려.워.말.고.많.이.쓰.면. 길지 않은 수업이었지만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아셨던 것일까.


그래서 그냥 많이 쓰기로 했다. 타고난 쫄보라 두려움은 어떻게 못하겠지만 일단 양으로 한 번 조져보고 두려워지면 그건 그때 선생님께 다시 여쭤봐야지. 나와 같은 시간을 숱하게 보내셨을 선생님은 또 무언가 하나 툭 던져주시지 않을까. 아니면 '기록'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해도 좋겠다. 왠지 내 인생은 마흔쯤 잘 풀릴 것 같으니까 그때 이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더 단단한 자신감이 생길 듯하다.


2020년은 역병으로 모두에게 고된 한 해였지만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뭘 해도 잘 안풀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던 지난 몇 년이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치기만 해도 아파 외면했던 시간들이 꽤 길었다. 하지만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풀어냈더니 이제는 조금 남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소득이 있다면 상황을 헤쳐 나오느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의 좌표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알았으니 두려워말고 많이 쓰고, 두려워말고 많이 해보면 되지 않을까. 비로소 내가 알아차린 지금 이 자리, 여기에 우두커니 서있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발걸음을 떼고 앞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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