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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조상묘를 잘 썼습니다

팀원복 하나는 끝내줬다는

좋은 팀원을 만나는 일은 좋은 팀장을 만나는 일만큼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조상묘를 잘 쓴 듯합니다. 팀원들하고는 너무 잘 맞아서 같이 놀기 바빠 문제였지 크게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요. 미래의 복을 다 땡겨다 쓴 것일까봐. 예전 회사에서 동료로서의 팀원들도 참 좋았고,  지금의 제 팀원들도 참 좋습니다.


마음 맞는 팀원들과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서로 자극을 주며 성장할 수 있는 관계는 정말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하고 일을 하면서 손발이 짝짝 맞는 느낌은 제가 조직생활을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팀 동료였던 사람들이 친한 친구가 된 경우도 많습니다.




A는 저와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직장에서 동갑 여자들과 잘 지냈던 것 같네요. 사실 회사에서 비슷한 나이, 비슷한 연차는 약간씩 서로 견제하는 구도에 놓이기도 하는데 저는 맥없이 같이 놀기 바빴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저를 아예 경쟁상대로 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네, 뭐 아무튼 지금은 다른 회사에 다니지만 서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솔직한 조언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서로에게 등판합니다.


A와 본격적으로 친해지게 된 것은 회사의 큰 행사를 치르면서 였습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A에게 어떤 업무가 주어졌는데, 제 3자인 제가 딱 듣기에 촉이 왔습니다. "야, 이건 일이 크다." 원래 자기 일은 남에게 더 잘보이기 마련이니까요. 회사에 외국 손님이 방문하시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주 잘해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팀원들 모두 힘을 모아 대표님 눈에 띄게 잘 치러냈고 A는 그 일을 계기로 더 좋은 기회가 주어져 여전히 엄청 멋지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쓸데없고 소모적인 경쟁을 하지 않고 서로가 잘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협업했습니다. 필살기가 다른 경력자 둘이 붙으니 일에 가속이 얼마나 붙던지. 제가 여태껏 일했던 시간 중에 제일 성장하며 재미있게 일했던 때가 A와 함께 일할 때였습니다. 서로의 업무 스타일과 성향을 잘 아는 우리는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서로의 상황을 알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건설적인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B는 제가 뽑았던 인턴입니다. 홍보 인턴으로 지원한 친구인데 저보다 여덟살이 어립니다. 그때 이력서만 400개를 받았습니다. 그중 1명으로 뽑혔으니 유학파에 화려한 스펙의 엄친딸 친구일 것 같지만 그냥 구파발에서 술먹고 노는 것 좋아하는 귀염둥이입니다. 물론 말귀도 잘 알아듣고 팀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센스쟁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뽑았는데 온 회사의 귀염둥이가 되어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B는 저의 보조배터리였습니다. 이런저런 일에 지쳐 너덜너덜해졌을 때 B를 데리고 나가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오면 다시 일을 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인턴을 붙잡고 뭘 그렇게 주절주절했나 싶어 미안하기도 합니다. 눈치 빠른 요 녀석이 너무 잘 받아준 덕분이죠. 사실 자잘한 업무에 대한 도움을 좀 받고 팀의 활력소 역할을 기대했던 건데 B는 아주 그냥 저의 마음을 훔쳐가버렸습니다. 너무 예쁜데 어떡합니까.


저는 마음둘 곳이 진창이든 사막이든 있고, 없고가 중요한 사람인데 황량한 회사에서 B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고운 마음 둘 곳이었습니다. 어린 데도 속이 깊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이제야 보이네요. 오히려 인턴이 끝날 무렵, 조직의 상황이 너무 안좋아서 험한 꼴만 잔뜩 보고 나가게 한 것이 두고두고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누군가에게 꽃길만 걸으라는 축원이 이런 걸까요. 어차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나쁘고 어려운 일 천지이니 여기서는 좋은 시간만 보냈으면 했거든요.


아무튼 우리 똘똘이 B는 열심히 취준을 하고 있고 곧 결실을 볼 듯합니다. 오늘 모 방송국 최종 면접을 본다고 했거든요. 이제 제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할 판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저의 팀원들과 소소하게 마니또 선물교환을 했습니다.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 정도 함께해 온 팀원들인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너무 느껴졌어요. 누군가가 온전히 나를 생각하고 고른 흔적이 느껴지는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라는 곳에서 팀원들과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괜히 더 울컥했습니다. 이런 좋은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덜 다치고 바라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돕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저도 역량을 더 키워야 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더 힘을 내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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