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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나는 싫은 게 엄청 많은 사람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도 그만큼 많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고, 그러다보니 세상사 이것저것 싫은 게 많아서 너무 피곤하지만 좋아함의 힘으로 금방 회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화를 만들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을 굉장히 귀찮아하기 때문에 너무 부당하고 노여운 것이 아니라면, 내 마음 속에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선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끔씩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주체가 안될 때가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를 들었을 때이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한 번 있어서 오늘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좀 해봤다.

나는 왜 유독 이런 것에 버튼이 세게 눌리는 것인가.


나의 문제라면, 뭔가 내가 들었던 내용에 대해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추고 싶은 나의 취약함을 들키고 화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문제라면, 본인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과한 나머지 상대방의 의견을 일부러 또는 자기도 모르게 의미없이 취급해버린 것을 내가 느껴버리고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둘 중에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어차피 상대의 문제는 내가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아니 한다고 하더라도 내 손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쪽에서 안바꾸면 땡이니까.


그래서 나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상황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태도와 이유에 조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태도보다 해결을 위한 역량이나 내용이 중요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나의 반응은 그 문제 해결의 컨텐츠가 어떤 그릇에 담겨 나오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물론 보기 좋은 그릇에 후한 점수를 주다가 내용을 챙기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적도 많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막 던질만큼 시급한 것이 아닌 이상 나는 여전히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말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나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절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해야할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안해도 될 말을 덜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것 또한 내가 듣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고 맡고 느낀 것보다 들은 것의 잔상(?)이 오래 가는 편이라 그렇다. 나 역시 수없이 많은 말실수들을 해왔고, 하고 있고, 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 제일 두렵다. 그리고 알아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내가 하는 말에 대한 확신도 없어진다. 호언장담이라는 걸 해본지가 오래다.


태도에 대한 얘기를 실컷 했다. 생각보다 해결이 안되고 있다. 자꾸 못바꾸겠다는 소리만 나오고 내 입장만 말하고 있지만...이유가 남았다. 이유에 집착하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을 말해준다. 우리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실속없는 것. 쯧쯧'. 사실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하지.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이유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달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되게 뚱하고 고집스럽게 생겼지만 나를 부리는 방법은 되게 쉽다. 이걸 왜 해야하는지 그럴듯한 이유나 명분을 만들어 내 심장을 저격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이미 저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슬프게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왜'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설명도 잘 해주지 않는다. 매번 나만 언제 알려주나 하고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거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게 삽질을 하다가 이제는 깨달았다. 남이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나라도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해야하는 강력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서 내 마음에 말뚝을 박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유가 동력이 되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주어야지 다른 것을 백날 줘봤자 얼마 못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며칠 전 찾아왔던 '겁나 싫음'의 순간은 의연하게 잘 대처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 못해먹겠네.'하고 도망칠 궁리부터 했겠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그 순간을 잘 피했다. 그리고 노트에 하나하나 써가며 스스로 이걸 해야할 이유를 만들어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돈이었다. 사람이 선택지가 별로 없으니까 오히려 명쾌하다.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싶고 그 일을 돈 때문에 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한 상대방은 계속 무례할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충분하니 나는 원하는 것을 부지런히 취하고, 다 취하고 나면 헤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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