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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모두가 그녀의 양말을 쳐다볼 때

좋았던 순간의 기록

되게 예전부터 좋아하던 브랜드가 있었다. 예쁜 동물 일러스트로 이런저런 소품을 만드는 작은 브랜드였는데 이제는 대기업과 협업을 할 정도로 큰 브랜드가 되었다. 뭔가 좋은 것을 발견하면 지갑이 간지러워 사서 써보고 입이 간지러워 주변에 막 소개하고 사주는 편이라 엄마한테도 에코백, 양말 같은 것들을 사드렸었다. 그런데 며칠 전 엄마 왈, 


“다들 모니카 니 양말 어디서 샀냐고 묻더라. 

다들 저 뒤에서 보는데 내 양말 밖에 안보인다고. 어데서 샀나?” 


막상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별거 아닌데...그래도 나에게는 엄청 기쁜 순간이었다. 뭔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남들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잘 알려지지 않은 걸수록 그 짜릿함이 크다. 결국 우리 엄마만 예쁘라고 브랜드와 온라인샵은 안알랴줌.

우리 가족을 굳이 기질적으로 부류로 나누자면 주로 무덤덤하고 표현 잘 안하는 아빠랑 나, 그리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표현하고 불편한 거 많은 엄마랑 동생이다. 부녀팀은 외출할 때도 대충 아무거니 걸치고 추위나 면하자 주의고 모자팀은 정말 옷을 몇 번을 갈아입고 전신거울 앞을 서성이는 편. 하지만 저 까다로운 모자팀도 외출 전에는 반드시 내 방문의 문지방을 밟는다. 착장 컨펌을 받기 위해서다.


 “그 옷은 이렇게 이렇게 입으면 더 예쁠 것 같은데?^^”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 따위는 모르는 나는 “쫌 구린데”하고 툭. 결국 불려가서 “이거랑 이거랑 이거 입어.” 모자팀이 아주 패셔니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라는 평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은 쓸만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막상 나는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고 저 팀에게 욕을 먹지만.

그리고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나를 오랫동안 봐온 친한 언니가 나에게 뜬금없이 마담뚜하면 잘할 것 같다고 했다. 아니 언니 내가 지금 내 앞가림도 못하는 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버럭했더니 깔깔깔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퀄리티가 좋으니 뭐든 많이 소개해주라고, 그렇게 돈을 벌라는 얘기였단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이런저런 연결도 많이 해주긴 한다. 좋은 거 있으면 막 소개하고 알려주고 싶지 않나? 나만 그래요? 아무튼 크게 욕먹은 적 없으니 결과도 나쁘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서인지 자꾸 사람들이 나보러 인맥이 좋다고 한다. 나는 막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는데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다 같이 술먹고 엉망이었던 사람들인데 다들 이제 번듯하게 자리잡고 자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또 다른 좋아하는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것도 중간자 입장에서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그걸로 얻어먹은 술만 해도 한 트럭은 될 듯.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다닌 것 뿐인데! 


이렇게 좋았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 좋음을 더 많이 주고 싶어서다. 기록하지 않으면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좋은 순간의 가닥들을 모아 한 묶음으로 만들어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이든 내가 보내게 될 시간에 좀 녹여보고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안은 더 거세게 나를 더 흔들어댈 거다. 그럴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바로바로 떠올라야 잠깐씩 숨을 수 있지 않을까. 


위에 적은 양말 에피소드처럼 사소하든 훌륭한 안목과 사람이 필요한 프로젝트처럼 거대하든 “어. 나 이거 좋아해”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해볼만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살아야 내일이 되었을 때 지나간 오늘 생각을 안하지 않을까.

아무도 나에게 선물처럼 좋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건 내가 고립되어서가 아니고 인생이 그냥 그런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인생이 길다는 건지 짧다는 건지 맨날 헷갈렸다.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다. 나는 길다는 쪽에 배팅을 해볼 참이다. 비도 오고 눈도 오고 벌레도 꼬이겠지만 전염병도 오고(ㅠㅠ) 아주 멋지진 않아도 오랫동안 공을 들인 정원 같은 모습이 된다면 나는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때 왜 그랬을까?”하면서 이유를 묻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마주하는 오늘의 일들을 쳐내며 내가 나를 기꺼이 구원해서 상쾌하게 내일에 데려다놓을 거다. 내일에 대한 생각도 안할 거다. 어차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모를 일에 내 시간을 때려박는 게 이제는 아깝다. 역병과 함께 시작된 숱한 고민의 시간들이 이제야 한 단락으로 마무리 되어가는 건가. 


올해 송년회는 없겠지만 2020년은 떠나가는 뒷통수까지 살뜰하게 봐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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