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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내가 임상아도 아닌데 왜 눈물이

1. 아침에 <김현철의 골든디스크>에서 어떤 청취자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김현철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라는 노래에는 어린이들의 맑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어있는데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30대가 되었고 그때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것이었다. 디제이 김현철이 읽어주는 사연 뒤로 노래가 깔리는데 내가 왜 울컥하는 것인지. 별것도 아닌 포인트에서 내가 아직 그렇게 피폐하지는 않구나 확인하고 현디가 들려주는 캐롤을 계속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2020년의 크리스마스 이브.


2. 오늘은 <화양연화>리마스터링 재개봉하는 날이다. 관객이 없어서 힘든 극장놈들도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거 보자 하는 건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재개봉하는 <화양연화>라니. 후배가 오늘 남자친구와 크리스마스 런치를 하고 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는데 판데믹 시대의 커플에게 뭔가 아릿하고 좋은 코스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일 보러 갈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연말이지만 크리스마스가 저물어 가는 어스름한 저녁에 혼자 보고 나오는 것도 꽤 낭만적이다.


3. 내가 어딘가에 기부를 한다고 생색내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는데 조금 다른 맥락에서의 고민. 나도 백수지만 그래도 따뜻한 부모님 댁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쌀을 먹으며 잘 살고 있으니 더 어려운 사람을 조금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여기저기 좀 둘러봤다. 보통 때 같으면 '그래, 연말이니까 그래도 여기 보내면 제일 보탬이 되겠다.' 이런 류의 생각이 드는데 올해는 내가 역으로 한 대 맞은 느낌이다. 평상시에도 취약했던 곳들이 '아야!'소리도 못하고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느낌. 마음이 안좋다.


4. 역병의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가족의 숙제는 새로운 시간에 적응하는 것이 된 듯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야 하는 일에 적응을 해야한다. 처음에는 좀 뻑뻑한 것 같았는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스물네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각자의 영역(각자의 공간 따위라고 할 만큼 널널하지 않으므로ㅋㅋ)을 지켜가며 나름 공존하고 있다. 공존이라는 거창해보이는 단어가 이렇게 아다리가 맞을 수 있다니. 코로나 시대의 아이러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은 숙성회를 떠오기로 했다.


5. 길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못본 것 같지만, 모두들 해피크리스마스! 다들 산타할아버지 겨냥해서 착한 짓할 겨를도 없는 한 해였으니 스스로 더 지치지 않고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하고 기분낼 수 있는 하루를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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