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게 많았지만 본능에 충실했다
예전에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컨텐츠가 있었다.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원래 잡지 <페이퍼>에 매달 영수증 사진과 짧은 글이 함께 연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때는 철딱서니 없이 속으로 '돈 쉽게 버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그런 컨텐츠를 기획하고 거침없이 내놓았던 것 그 자체로도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소비가 곧 나를 증명하는 시대가 오기도 전에 진짜 앞서나갔던 것 아닌가(그리고 알고보니 그 분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업계 선배(?) 같은 분이었다는. 엄청 능력자 카피라이터셨다!).
그리고 영수증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만 더 말해보자면, 대학교 때 남자친구가 100일인가 1주년 선물로 나와 데이트를 했을 때 영수증을 붙이고 짤막한 글과 그림을 덧붙여 선물해줬던 적이 있다. 나는 '귀엽고 섬세한 녀석 같으니'하고 흐뭇하게 받았었는데 이 얘기를 들은 누군가가 '혹시 나중에 너한테 청구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구나! (다행히 나보다 훨씬 더 심성이 고왔던 당시 남자친구는 따로 청구를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 사람의 소비만큼 그 사람을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없는 듯하다. 어쩌면 나보다 내 카드 명세서가 나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니 온갖 데이터 사냥꾼들이 그 수많은 '동의' 체크박스들을 만들어내겠지. 나도 맘 먹고 쓸라치면 정말 신나게 쓸 수 있는데 조신하게 살아야 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소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일이 없을 것처럼 막 쓸 때와는 다르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가 너무 뚜렷하게 보여서 오히려 더 재미있다는 말씀.
나의 구매는 주로 YES24와 네이버 쇼핑에서 이루어진다. 모두 갓팡을 외치지만 개인적으로 갓팡은 안좋은 기억도 있고(...) 동생이 로켓와우 회원이라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어서 혼자 포인트 따먹기 좋은 네이버를 주로 이용한다. 책은 사실 거의 다 아직 사지 않은 것들이다. 궁금한 책이 있으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 네이버 쇼핑은 다 이미 구매한 물건들이다. 자, 하나씩 들여다보자.
...뭔가 맥락을 추려내려고 해도 책들이 다루는 내용들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도무지 잡아낼 수가 없다. 대략 나는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 같고, 불확실성 속에서 단단하게 균형을 좀 잡아보고 싶기도 하고, 동시에 사회의 약자들에게도 마음이 쓰이는데, 김은희 작가의 <북유럽> 추천작도 궁금한 것이다. 궁금한 것에 대한 대답을 주로 책에서 찾으려고 하는 편이라 그런지 구하고자 하는 답이 많은 요즘은 부쩍 장바구니가 미어터진다. 120권 넘게 있어서 한 번 좀 비우려고 훑어보는데 언젠가 다 읽을 것 같아서 못비우겠다는 미친 소리를 해본다.
다음은 쇼핑이다.
YES24의 지적탐구(?)와 달리 너무 본능에 충실한 쇼핑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다이어트와도 내외하게 되어서 계속 이렇게 살면 큰일나겠다 싶은 지점에 도달한 결과다. 커클랜드 그릭요거트 배송할 때 안터지게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고, 고구마 생각보다 맛있어서 자꾸 끼니 아니고 간식이고, 옛 회사 동료가 만드는 그래놀라 너무 맛있는데 계속 먹자니 가격이 좀 부담스러워서 싼 걸로 돌렸고(다시 돈 벌면 사먹을게요!!!), 맨날 쓰던 실크테라피 에센스 샀고, 운동할 때 다리가 너무 추워서 앙고라 토시 샀다.
새해에는 뭐든 좀 많이 기록을 해놓기로 했다. 할 때는 번거로워도 확실히 기록을 잘 남겨놓으면 다음을 계획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이나 가졌던 마음들이 떠오르며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왠지 오늘 이걸 쓰고 보니 그 어떤 주제의 컨텐츠보다 내가 오랫동안 꾸준히 밀고나갈 수 있는 핵심(?) 컨텐츠가 될 느낌이 확 온다. 1월에도 나의 장바구니는 미어터질 것이고, 구매내역은 비어있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I'll b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