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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03. 2021

팀장이 곧 회사다

꽃길과 불지옥 그 어딘가

지금까지 겪었던 팀장님들의 이름을 쭉 써봤습니다. 10명 정도 되는데 오랜만에 이름을 직면하고 보니 솔직히 말하면 반가운 이름보다는 괴로운 이름이 더 많네요. 하지만 이 나이 먹어서 그 사람들 다 나빴어 하면 저도 너무 나이값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또 제가 팀장을 달아보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가 가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몇몇 팀장님께는 사죄타임을 갖고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고요. 제가 그때 잘못해쯥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조금 미숙해서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그래도 이제는 좀 달라졌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막상 저도 해보니 그때 너무 싫어했던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요. 하나도 안궁금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가도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이고 싶기도 합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아무튼 좋은 팀장을 잘 만나는 것도 인생의 큰 복입니다. 부모님, 남편, 아내, 자식 등 같이 사는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다보니 나의 행/불행을 결정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많이 없다는 것도 함정입니다. 또 단순히 많고 적고를 떠나 이것 또한 관계이다 보니 두 사람의 합이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나랑 맞냐 안맞냐. 네, 주로 안맞죠. 혹시나 잘 맞는 팀장님과 지내고 있다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잘하셔야 합니다. 다시 만나기 굉장히 힘든 분입니다.


어떤 남녀가 서로를 같은 타이밍에 좋아하는 것이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팀장님과 맞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팀장님과 저, 둘만의 로맨스가 아니라 회사 속 아주 많은 역학관계와 개 같은 아니... 어려운 상황 안에서도 이 관계가 살아있을 수 있을 만큼의 신뢰와 기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심지어 같은 편이 되어 많은 일들을 헤쳐나가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 내가 가는 길을 앞서서 걸어간 인생선배,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정말 귀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피해야 하는 팀장의 유형을 쓰고 싶었지만, 기쁨을 말하기로 해놓고 자꾸 불행배틀, 지뢰찾기가 되는 것 같아  제가 겪거나 보았던 팀장님들의 좋았던 점을 모아보았습니다.




1. 그냥 다 됐고 넘사벽 똑똑한 팀장님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을 만나면 납작 엎드려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런 사람과는 뭔가 같이 하면 할수록 내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약간 똑똑한 정도로는 안됩니다. 날카로운 피드백에 반박불가, 진짜 사람 할말 없게 만드는 수준으로 똑똑한 분이어야 합니다. 그런 분이라면 이미 조직에서는 잘 나가고 있을 거고(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그 팀 또한 사내에서 파워가 있을 것입니다. 회사생활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애매하게 똑똑하고 나쁜 분들이 호불호 갈리는 평판이 나오는데('똑똑하긴 한데 사람이 좀 별로야.' 같은) 진짜 똑똑한 사람은 평판의 ㅍ이 나오기도 전에 "그 사람 겁나 똑똑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의 직속 팀장님은 아니었지만 딱 한 명 봤습니다. 성격이 약간은 지랄맞았지만 그래도 맞는 말 대잔치에 함께 일을 할수록 깨닫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가르쳐 주는 것도 잘 가르쳐줍니다. 똑똑하니까요. 인성논란 이딴 것도 없습니다. 공감은 지능순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너무 똑똑한 나머지 회사에 잘 안남아계십니다. 주로 사업을 한다거나, 사업을 한다거나, 사업을...회사 바깥은 많이 추운 것 같아보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기존 회사 조직은 저런 똑똑한 사람들을 잘 못품습니다. 말을 잘 안들으니까요. 애매하게 똑똑한 사람,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 똑똑한 사람은 어딜 가나 드뭅니다. 


2. 여러모로 여유가 좀 있는 사람 

여러분, 곳간에서 인심 납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저 찰떡같은 비유에 물개박수를 치게 됩니다. 집이 잘 살아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 사람이 그릇이 커서 마음이 넉넉하든 여유가 있는 팀장님이 좋습니다. 팀장님이 각박하면 내 하루가 각박해지고, 정말 내 인생이 각박해집니다. 집이 부자인 팀장님은 일단 회사를 좀 대충 다닙니다. 그리고 돈 쓰는 것에 대해 그렇게 각박하게 굴지 않아서 일을 하기도 수월합니다. 밥도, 술도 잘 사줍니다. 


그리고 곳간이 아무리 넉넉해도 문을 열지 않으면 꽝인데 가끔씩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나를 맞아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곳간에 곡식이 넉넉하든 아니든 언제든 문을 열어주시는 분들이지요. 저는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제가 너무 한참 막내라 회사분들이 밥을 엄청 많이 사주셨습니다. 매번 너무 죄송해서 커피라도 사려고 하니 그때 저희 차장님의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지 않겠니? 너는 나중에 너의 후배들을 사주렴." 


지금 제가 그때의 차장님 나이가 되어보니 돈도 돈이지만 그런 마음씀씀이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더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많이 베풀고 사람을 아끼셨던 차장님은 뭔가 늘 손해보고 상처받는 듯하셨지만 결국 그들의 힘으로 잘 버티셨고 지금은 큰 외국계 회사의 이사님으로 계십니다. 


3.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

40대 이후에는 이 부분이 그 사람의 앞으로를 꽤 크게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40이라는 나이는 딱히 뭔가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곧 제가 마주할 나이라서 그렇습니다. 저도 새로운 것에 꽤 열려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두렵고 겁이 납니다. 모른다고 하면 괜히 나만 몰라서 망신당할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피하고 익숙한 것만 하다보면 어느덧 내가 그 덫에 빠집니다. 


과장급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차부장급이 되면서 눈에서 총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꽤 많이 봅니다. 그 사람을 어느 시기에 만났느냐에 따라서 평판이 너무 극단적일 정도로 자기도 모르게 변해갑니다. 그런데 제가 함께 일했던 어떤 팀장님은 회사 다닐 때 "나 그거 잘 모르는데? 가르쳐줘."라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잘 했습니다. 그때는 저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렸었는데 지금은 그 어떤 말보다도 쿨하고 단단한 말로 느껴집니다. 


물론 너무 근본 없이 모르기만 하면 제가 여기에 이렇게 쓰지도 않았겠지만 뒤에 이어지는 "가르쳐줘."가 핵심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는 거죠. 저런 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성장해서 그 사람이 뭘하는지 궁금해서라도 계속 연락하고 만나게 됩니다. 광고회사 기획자였던 저 분은 지금 독학으로 스케치 프로그램을 배워서 인테리어 회사를 하고 계십니다. 




저도 지금 처음으로 팀장을 해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쓰겠지만 미래의 운을 다 끌어다썼는지 팀원들이 너무 훌륭해서 저는 날로 먹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상했던 팀장님들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팀장도 한 인간이고 그 사람의 불완전함이 일과 조직생활을 통해서 줄줄 새어나오는 것이니까요. 


팀원들이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도 정말 운이 좋고 행복한 일이지만 결국 팀장 본인의 숙제 같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한 인간이 30년이 넘도록 채우지 못했던 구멍이 그렇게 쉽게 메워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가는 과정에서 만나기도 하고 같이 걷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구멍을 보기도 하고 못보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의 뻘짓은 이미 지나갔으니 일단은 온몸으로 끌어안아 인정하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조금 순한 맛으로 가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의 구멍을 좀 덜 들키고 싶습니다. 우리 팀원들한테 쿨하고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참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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