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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pine Dec 29. 2020

‘셜록 홈즈’라는 구체제를 전복하는 대담한 영화

영화 <에놀라 홈즈>




이 글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셜록 홈즈. 탐정의 대명사. 아니 탐정이라는 명사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그에게 탐정 여동생이 있었다? 2020년 9월, 넷플릭스를 통해 <에놀라 홈즈>가 공개되었다. 이 영화는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작가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에는 없던 캐릭터인 ‘에놀라 홈즈’를 창조하여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소설은 총 여섯 권의 시리즈로 출판되었고, 영화는 그중에서도 2006년에 출간한 첫 번째 작품, <사라진 후작>을 그리고 있다.



만 16살이 된 에놀라. 그녀를 키워 준 어머니가 사라졌다. 홈즈라는 성에 걸맞게 탐정 본능에 이끌려 어머니를 찾아 런던으로 향하며 영화는 본격적인 전개를 맞이한다.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앞서 ‘홈즈’라는 성에 주목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의 오빠는 셜록 홈즈. 우리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에놀라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물론 아직 사회 경험이 전무한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탐정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도 전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홈즈’라는 이름표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번뜩임을 기대한 관객들에겐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래도 에놀라에겐 셜록과는 다른 능력이 있다. 바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훈련받은 탁월한 운동능력. 특히나 주짓수로 다져진 무술 실력은 수준급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추리, 심리 서스펜스보다는 속도감 있는 연출과 경쾌함을 바탕으로 에놀라의 모험극을 보여주는 액션 활극의 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에 밀리 바비 브라운은 당차고도 매력적인 에놀라라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내며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녀의 성격처럼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서슴없이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에놀라.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구시대를 전복시킨다.


세상을 바꾸려는 두 여성이 있다. 한 명은 정당한 수단을 통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무력을 동원하고자 한다. 다른 한 명은 간접 선거라는 원칙에 의거,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한다. 전자의 여성은 에놀라의 어머니 유도리아 버넷, 후자는 주인공 에놀라이다. 두 사람은 모두 참정권 확대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물론 에놀라가 참정권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튜크스베리를 구해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참정권 확대가 실현되는 것을 보면, 원하는 인물을 의회에 등원시켜 표를 행사하는 간접 선거의 형식을 보이는 것이 명백하다) 영화의 가장 큰 줄기를 형성해 나가는 이 두 인물은 그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 안에서 구시대의 모순을 무너뜨리려 한다. 부르주아지 남성들에게 국한된 투표권을 여성에게도 확대하며, 사회를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자 한다. <에놀라 홈즈>는 명백히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하는 페미니즘 영화인 것이다.



성 역할 프레임을 전복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구제하려는 것은 코르셋에 갇혀버린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남자다움이라는 역할에 갇혀버린 남성들 또한 구해내고자 한다. 에놀라와 함께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튜크스베리는 허브와 꽃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가출을 감행하며 그가 향한 곳은 런던의 꽃가게. 에놀라가 주짓수에 능통하다 보니 언제나 킬러와 결투를 벌이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반면, 튜크스베리는 에놀라를 두고 먼저 도망가야 하는 처지이다. 으레 변장을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여성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튜크스베리의 찰랑거리는 장발이 숏컷으로 변모한다. 에놀라와 튜크스베리는 각자의 성 역할 프레임을 끊임없이 깨부수며 전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클리셰를 전복시킨다.


또한, 기존 페미니즘 영화들의 클리셰도 답습하지 않는다. <에놀라 홈즈>에서는 주체적인 여성과 억압하려는 남성의 갈등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 대신 구시대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젊은 세대와 이를 막으려는 구세대를 그려낸다. 초보 탐정 에놀라와 이제 막 상원 의원으로 활동할 어린 튜크스베리. 어린 남녀가 힘을 합쳐, 영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가족도 서슴없이 살해하는 늙은 귀족 여성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과거를 깨부수고 현재를 쟁취한 그들은 이제 미래를 얘기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며 젊은 세대들이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립해야 한다고 말이다. 명백히 이 영화는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영화이다. 이와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주체성을 무장시키고 변화에 앞장서라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에놀라 홈즈>는 ‘전복’이라는 내러티브를 차용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서는 분명히 실패했다. 우리가 사랑한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덩치 크고 폼만 잡는 방관자로 전락시킨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우선 대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보였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다 보니 이야기와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고 개연성은 부실해지는데, 딱 이 영화가 그러하다. ‘어머니를 찾는 에놀라의 모험’, ‘튜크스베리를 구하는 에놀라의 모험’. 이 두 가지 큰 줄기를 이어내는 데 실패했다. 어렸을 적 어린 양에 관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어머니를 찾는 대신 튜크스베리를 구하러 간다는 허술한 전개로 인해 관객을 에놀라의 모험에 동참시키는 것에 실패하고 만다.


“선택은 언제나 네가 하는 거야. 사회가 뭐라고 주장하든 널 통제할 수는 없다.”

“널 위해서 떠난 거야. 너의 미래에 지금 같은 세상을 물려주기 싫어서”

“난 투쟁해야 했어. 너의 의견도 존중받고 싶으면 소리 높여 말해야 해.”

“다른 사람 찾지 말고 네 자아를 찾아!”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어.”


또한 이 영화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인물의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세련되지 못한 방식을 사용한다. 이로 인해 관객이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깊은 공감에는 이르지 못하게 한다. 준비했던 소중한 메시지들이 관객들의 가슴에 닿지 못하고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후속작이 나오길 기대해 볼 만하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에놀라 홈즈는 이렇게 선언한다. ‘저는 탐정이에요. 암호 해독가이자 길 잃은 어린 양을 구하는 사람이죠.’ 탐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관객들에게 선언하는 그녀이다. 기존의 셜록 홈즈와는 다르게 비상한 두뇌는 물론, 뛰어난 신체 능력까지 겸비한 탐정. 괴짜 싸이코가 아니라 어린 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탐정이다. 그렇다. 에놀라 홈즈는 ‘탐정=셜록 홈즈’라는 옛 질서를 전복시키기 위해 기존의 셜록 홈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대담하게 등장한 것이다. 에놀라 그 스스로 관객들에게 당당히 선언한 만큼, 셜록 홈즈와는 다른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후속작에서 목격해봐야 하지 않을까?




<에놀라 홈즈(Enola Holme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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