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용해 가족들 모두 아버지 병문안으로 병원에 모였다
오늘은 아버지도 기분이 좋으신지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가며 눈을 마주치신다
옆에 앉은 누나가 조카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아빠 얘 누구야? 난 누구야?"
요즘 아버지가 정신이 없으신 걸 알고
가족들은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기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반복해서 물어보는 게 일이다
힘없는 목소리긴 하였지만 아직도 유머만큼은 잊지 않으신 듯 말씀하신다
"에이 그걸 몰라?.. 적장손 아냐~"
아버지는 당신의 손자를 항상
적장 손이신가~~~ 이렇게 부르시곤 하셨다
형이 아이가 있지만 딸아이 하나라
사내아이인 혁창이를 항상 적장의 귀한 손이라 하셨다
병원은 주말이라 그런지 다른 환자들도 가족들의 병문안으로 병실 안은 복잡 복잡하였다
우리도 서둘러 4명씩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머지 4명이 교대로 점심을 먹고 오기로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간호사분들과 간병인 분들 드실 빵과 커피를 사 오는 것도 있지 않았다
오늘은 아버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고 섬망 증상으로 얼마 전 간호사분들이 고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라 커피 한잔으론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부족하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성의 표시는 하고 싶었다
병실의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신다
"네 전화기에서도 그거 나와?"
"뭐?"
"노래 같은 거"
"그럼 나오지"
"그럼 그거 한번 틀어봐.. 신유"
"신유?.. 가수?"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신유라는 가수의 노래가 여러 개 보인다
그중 조회수가 많은 노래 한곡을 선택하여
이어폰을 아버지 귀에 꽂아드리고 다른 걸 보고 싶으시면 이걸 누르면 된다고 알려드렸다
한참 동안을 반복해서 신유 노래를 들으시던 아버지는 피곤이 몰려오시는지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며 자리에 누우셨다
다시 시작된 항암치료에 오래 앉아 계시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더 대기실에서 수다를 떨다 아버지가 잠든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병문안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섬망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때라 병원에서 엄마가 자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자고 싶어도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일산병원은 포괄간호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병원이라 가족 간병인이 병원에 머물거나 잠을 자지는 못하였다
아버지가 어제 병원에서 신유 노래를 잘 들으시던 게 생각나 출근을 하자마자 인터넷으로 태블릿 pc를 알아보았다
항암치료와 각종 약물 치료로 3일 또는 4일씩 입퇴원을 반복하시면서 티브이가 없는 병실에 계시는걸 많이 답답해하시는 모습에 심심할 때 티브이라도 보시면 조금 나으실까 하여 적당한 태블릿을 하나 구매하였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아버지께 태블릿을 전해드릴 생각에 마음이 살짝 들뜬상태였다
가족들 단톡 방에 구매한 태블릿 사진을 올리며
제가 오늘 저녁에 병원에 가서 태블릿 pc 아버지
보여드리고 사용법 알려드리고 엄마 모시고 집으로 온다는 글도 남겼다
퇴근을 막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다급한 목소리의 형수였다
"서방님 오늘 태블릿 사신 거 가져오지 마세요
전화받고 지금 급하게 병원에 왔는데 아버님이 링거를 다 뽑아 피가 많이 나고 기물을 파손하여 지금 진정제 투여하고 잠시 조용한 상태예요
태블릿 가지고 오시면 아버님이 집어던질 거 같으니 가지고 오셔도 꺼내진 마세요"
섬망 증상이 나아진 게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족들 모두 그날 알았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차마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낼 수 없었다
침대에 팔다리가 묶여 있었고 자기를 가둬둔다는 불안감이 오랜 약물투여로 인해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섬망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심해진 아버지의 증상과 알 수 없이 계속되는 섬망 증세로 모두가 힘들어했다
형과 상의 끝에 아버지의 항암치료를 중단하였다
한 달새 급속도로 쇠약해진 아버지의 모습
온몸은 퉁퉁 부어오르고 배는 임산부의 배처럼
복수가 차 올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버지의 변해버린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아버지 드리려고 산 건데 한번 사용도 못해보시고
병원 퇴원하시면 나와 함께 스마트폰 사러 가자고 하셨는데 그 약속도 못 지켜 드렸다
이제는 주인 잃은 태블릿 pc와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오래된 폴더폰만이 남아있다
병원에 계시던 오랜 시간 티브이가 없어 심심하셨을 텐데 진작에 태블릿을 사다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남는다
작년에 아들이 인강용으로 몇 번 사용한 게 전부인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태블릿 pc
아버지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물건이지만
나에겐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품 같은 물건이다
오늘따라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주인 잃은 태블릿 pc가 아버지 생각을 많이 나게 한다
아마도 이 태블릿 pc는 30년 40년이 지나도
이상태 그대로 내 곁에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