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살구 꽃비가 내렸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누나가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팔 뒤꿈치를 왼손으로 누른 상태로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들어온다
앞마당에서 큰 고무 다라를 가운데 놓고 김치를 담기 위해 배추를 다듬던 할머니와 엄마는
배추를 다듬던 칼을 내던지고 누나에게 달려간다
눈물로 범벅이 된 때 구정물 흐르는 얼굴과
한쪽 팔에 흐르는 피를 보며 엄마의 얼굴은 금방 새 하얗게 질려 버렸다
"어디서 그랬어?" "누가 그랬어?"
"어머어머 이를 어쩌냐?
누나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머리 뒤통수에서도 피가 나는 걸 알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말위에 앉아있던 나는
누나의 울음소리에 함께 따라 울었다
삼 형제가 두 살 터울씩이 나는 우리의 그때 나이가
누나만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로
기억이 든다
자전거가 타 보고 싶었던 누나가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자전거를 태워준다고 자전거 뒷자리에 앉았다가 아저씨의 허리춤을 붙잡기도 전에 자전거가 출발하는 바람에 그대로 뒤로 떨어져 팔꿈치와 뒤통수를 땅에 처박은듯하다
그때의 상처로 누나의 팔꿈치와 뒤통수에는 엄지손톱만 한 땜통이 지금도 머리카락 속에 숨겨져 있다
상처가 아문 뒤로 나는 새살이 돋아 부드러워진 누나의 땜통 부위를 한 번만 만져 보자며 흥정을 하는 게 누나를 놀려먹는 유일한 낙이었다
바로 병원을 가서 꽤맷어야 했는데
그 시절엔 왜 그랬는지
웬만한 상처엔 그냥 시간이 지나 아무는 게 약이었다
그래도 여자 아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와
여기저기 거즈를 붙이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형을 시켜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호빵을 사 오라고 해 땜통 생긴 누나 덕에 보기 드문 야식을 먹을 기회도 얻고 누나가 다친 게 나쁘지 만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누나의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어져 가던 일요일 아침
아빠가 앞마당에서 우리를 모두 불러 모았다
앞마당으로 나간 우리의 앞에 떡하니 놓여있던 건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쇠로 된 자전거 한대였다
뒷좌석은 쌀 한 가마니를 실어도
거뜬해 보일만큼 보통의 자전거와는 포스가
남다른 자전거의 모습이었다
일명 짐 자전거라 불리는 이 자전거는 시장통에서 아저씨들이 짐을 싣고 골목을 누빌 때 쓰는 바로 그 자전거였다
얼마 전 누나가 자전거가 타고 싶어 다른 아저씨 자전거 뒤에 탔다가 다친 걸 생각해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고 아빠가 빌려온 자전거였다
오늘 너희들이 자전거를 잘 배워 탈 줄 알게 되면
우리 집도 자전거를 한대 살 꺼라며
이제부터 잘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키보다도 큰 자전거를 어떻게 타라고
가져오신 건지...
그렇게 우리 삼 형제의 자전거 교육은 시작되었다
아직 눈곱도 때어지지 않은 이른 시간
삼 형제를 나란히 세워놓고 아빠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분명히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려는 반대방향으로 핸들을 돌리지 말고
쓰러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 페달을 밟으면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하며 자전거를 배워 나갔다
형이 혼나가며 배우던 모습을 계속 옆을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다
어떻게 두발로 된 자전거가 쓰려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지 이해할 겨를 없이 자전거 교육은 계속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 커다란 자전거 받침을 세워놓고
정지해 있는 자전 거위로 몸을 실었다
커다란 자전거 위에서 내려대 본 그때의 심정은
성인이 되어 제주도에서 처음 말을 타본 그때의 기분과도 비교될 만큼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2층 높이는 돼 보이는 커다란 짐자전거의 안장에 앉아 내려다보는 전경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페달은 위쪽 방향으로 올라왔을 때 한쪽 발만이 간신히 닿을 만큼 핸들을 양손으로 잡기에도 버거운 크기의 자전거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뒷좌석을 잡고 끝까지 자전거를 놓지 않고 잡아 주셨던 아버지
그렇게 자전거를 처음 배운 날이 기억난다
살구꽃잎이 눈처럼 내리던 3월 말의
나의 고향..
나의 집 앞..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살구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3월 말이 되면
그때가 생각난다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는듯합니다
저에게는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그 날이 기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자전거가 넘어질세라 쫓아다니며
자전거의 뒤를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런 장면들이 영화 속 빛바랜 필름처럼 기억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이 있을 겁니다
다른 모든 것에 비해 자전거만큼은 아빠가 가르쳐준 기억들이 많으실 겁니다
지금은 조금 소원해진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분도 계실 테고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 때가 있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은 분도 계실 겁니다
왜 아버지의 대한 기억은 나이 든 모습만이 머릿속에 기억돼 있는 걸까요?
분명 아버지도 20대 30대가 있으셨는데 말이죠!
아버지란 존재를 희생과 가족을 위해 고생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젊었을 때의 멋진 모습은 기억 속에 없는 건 아닌지..
오늘은 오랜만에 어릴 적 자전거를 배우던 그 시절
아들 딸로 돌아가 전화라도 한 통화드리는 건
어떨까요?
아버지도 지금 그 옛날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그때 그 시절 앨범을 뒤적거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