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못다 한 이야기

by 시소

#아버지의 다이어리


책장을 빼곡히 채운 다이어리가 눈에 띈다
저걸 버릴 수도 없고 안 버리고 모아두자니
자리만 차지하고 별 쓸모는 없어 보인다

1985년 다이어리부터 2019년 다이어리까지
어느 해는 없는 다이어리도 있고
어느 해는 2~3권의 같은 다이어리도 있고
연도별로 정리되어 나란히 책장에 꽂혀져 있는
다이어리가 참 사람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대기업 건설회사 임원까지 하시다 정년퇴임을 한 아버지는 건설 관련 책자들이 많았다
관련 서적부터 스크랩북까지 알 수 없는 책들로 책장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한쪽 방에 따로 만들어 놓은 책장 비슷한 장식장에는 회사에서 연말이면 나오는 회사 다리 어리가 빼곡했다
다이어리를 보면 아버지가 회사를 퇴임하던
1999년까지의 건설회사 다이어리가 주를 이뤘고
그다음 해부터는 건설회관에서 보내오는 다이어리가 한쪽 구석을 나란히 채우고 있었다.

책장을 바라보다 또 한 번 울컥한 일이 있었는데
빼곡히 들어찬 다이어리를 보면 나름의 규칙이 있어 보였다
아버지가 재직 중 받아온 다이어리
아버지가 퇴임 후 받은 다이어리
자식 둘이 성장하여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받아오기 시작한 다이어리가
혼자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은 나열로
규칙적으로 꽂혀져 있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있고 웬만한 회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이어리에 아버지는 유독 집착이 강하셨다
그걸 다 무엇에 쓰시려고 그러셨는지?
그냥 모아두는 재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형이 회사에서 받아온 다이어리 옆으로 막내아들이 회사에서 받아온 다이어리가 보인다
아버지가 다이어리에 애착을 가지시는걸 진작에 알고 있던 터라 우리 형제는
연말에 회사 다이어리가 나오면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는 게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기를 며칠
어젯밤 늦게까지 엄마 집에서 정리를 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까기 늦잠을 자고 있는데 카톡 소리가 잠을 깨운다
(늦게까지 짐 정리를 하다가 형은 엄마 집에서 잠을 잔 거 같다)

형이 보낸 가족 단톡 방 카톡이었다
"다들 한번 보세요 아버지가 일기를 쓰고 계셨던 거 같습니다 아침부터 저를 울리네요"

카톡의 창을 열어보다 그대로 침대 속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었다

서문으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일기였다!


서문
본기 일기는 무술년 정월초부터 시작해서 쓰려고 준비하였는데 정유년(양 7.2.26)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종합검사에서 갑상선으로 판명되어 시술하고 지금은 약물로 치료 중이다.
ㅇㅇ이 되니 아무래도 부족한 것이 많고 언자 한자가 아물거리오 생전에 나지 않는 언도 서툴러 정신수양 겸 서둘러 일기를 쓰려하는데 얼마나 쓸지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침대 바닥이 축축해질 무렵 와이프의 위로를 받으며 시뻘게진 눈을 떴다

아버지가 일기를 쓰고 계셨다는 걸 모르고 있던 터라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총 두 권으로 되어있는 일기장은 겉표지를 직접 만들어 붙인 꼼꼼하게 제작된 일기장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이어리를 놔두고
결제 서류철 같은 걸로 겉표지를 만들고
철 지난 이면지같이 생긴 다이어리에 빼곡히 써 내려간 일기!

참 마음 아픈 내용들이었다
일기를 쓰시기 시작한 뒤로 바로 항암치료가 진행되어 많은 내용의 일기가 있지는 않지만
죽음을 직감한 당신이 죽음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글로 표현한다는 거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 권은 메모 형식으로 쓴 내용들을 묶어 놓은 철 형식의 일기장이었고
한 권은 끝까지 채우지 못하신 채로 마무리된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새 다이어리들...
아끼지 말고 좀 사용이나 하시지...
엄마에 대한 원망 그냥 안고 가시지...
하고 싶었던 말 그냥 안고 가시지...
남은 가족들 어찌 살라고 하고 싶었던 말
다 써 놓고 가셨는지...
엄마가 밥 한 끼 안차려 준 게 뭐 그리 대단히 섭섭하다고 일기로 그걸 기록까지 하셨는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시지...
당신은 참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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