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봄.. 가을.... 다시 겨울

사진 한 장에 담긴 두 가지 해석

by 시소


유난히 추웠던 겨울

문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쌩쌩 들어온다
창문 바깥쪽으로 비닐이라도 쳐달라고 그렇게 얘길 했지만 나보다 11살이나 많은 남편은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다

신문지를 대충 구겨 젓가락을 이용해 문틈 사이에 쑤셔 넣어지만 1월의 칼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걸레를 빨아 방 윗목에 놓아두면 그대로 꽁꽁 얼 어 붙어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에 누가 발로 건드리 기라도 하면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한옥의 웃풍이 얼마나 샌지 한옥에 살아본 사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딸아이와 내가 지내던 4평 남짓한 건넛방엔 불 때던 아궁이에서 연탄보일러로 바꾼 지 몇 해 되지 않는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방 저 방 연탄불을 갈아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불 때던 아궁이에 비할 바냐며..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불평은 접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연탄 2장이 들어가는 레일을 깊숙이 밀어 넣어봐야 1월의 강추위의 아랫목을 달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난방 시스템이었다

서울에 부잣집이라고 시집을 와서 본 시댁은
집만 커서 일거리만 많지 60년대 후반인데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전통 한옥집이었다

한 번은 새벽녘에 들러붙은 연탄을 떼어내기 위해 콜라병으로 새 차 게 내려치다가 헛손질로 콜라병을 놓쳐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시아버지께 조심성 없다며 꾸지람을 들은 날도 한두날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좌충우돌 결혼생활은 나에겐 너무도 고되고 배워도 금방 잊어 먹는 것들 뿐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74년 1월
내가 막내를 출산한 그 해의 겨울 풍경이다





음력설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남산만 해진 배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몇 시간 만이라도 따뜻한 방에 누워 낮잠을 자보는 게 소원이지만
내일은 방앗간에 가서 떡도 해 와야 하고 일이 산더미였다
그래도 오늘 큰 일중 하나인 두부를 해 놓은 게
마음 한구석에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밤 열시나 됐을까?
남편은 아직 집에 들어오기 전이다
칭얼대던 첫째와 둘째는 조금 전 시어머니 옆에서
잠이 들었다
이놈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배가 쌀쌀 아파온 덕에 저녁을 조금 먹어서 그런가
배가 너무 고파 뒤란으로 나가 아까 해놓은 차가운 두부 반모를 그 자리에 선체로 우걱우걱 집어 먹었다

낮에 했던 뜨끈한 순두부 한 그릇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그 생각에 배가 더 고팠나 보다

나 같았으면 만삭에 며느리에게 금방 한 따끈한 순두부를 먹어보라고 했겠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따뜻하게 날 챙겨주던 그런 시어머님은 아니었다
아범 오면 주라고 한 그릇 따로 퍼 놓으라는 말만 하신 채 내가 먼저 먹는 걸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만삭의 며느리가 오늘내일하는 걸 시어머니도 알고 계셨지만 배가 고픈지 배가 아픈지
그런 걸 신경 쓰는 대신 추운데 무슨 병원을 가냐며 설이 코앞인데 일이 산더 미니 병원 갈 생각일랑 하지 말고 아이가 나오거든
집에서 낳을 생각을 하고 있으라고 섭섭한 말만 늘어놓은 상태였다



저녁에 추운 곳에서 먹은 두부가 잘못된 걸까 복통이 밤새 날 괴롭혔다
재래식 화장실은 대문 밖을 나가야 있어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일이었다

연탄불을 갈 시간쯤이 돼서야 진정된 배는
설사는 멈추었지만 첫째 둘째를 낳아본 경험상으로 진통임을 알 수 있었다


"여보 나 이상해.. 애기가 나오려고 하나 봐?"

내 말은 들었겠지만 그 뒤로도 30분은 그대로 누워있던 남편이 싫은 표정이 역력한 채로 어머님을 깨워 급하게 물을 끓이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진통은 3시간여 만에
끝이 나고 오전 9시에 막내를 낳았다


첫째 둘째는 병원에서 낳았지만
셋째는 추운 겨울 날씨에 병원에 다니기 쉽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설이 코앞이라 집에 나 말고 일할 사람이 없어
말 그대로 일하다가 집에서 아이를 낳은 샘이 돼버렸다

아이를 낳았지만 온기가 없는 웃풍 샌 방에
애기가 태어나 얼마나 추웠으면
코가 항상 딸기코처럼 새빨개져 있었고
목욕이라도 시킬라치면 그 작은 아이가 벌벌 떠는 모습이 항상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남편도 도저희 안 되겠던지
아이가 태어나고 3일이 지나고 나서야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아랫동네 사람을 불러 연탄난로를 방안에 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생아와 산모가 있는 방안에
연탄난로라니
요즘 같았으면 뉴스에 나올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 연탄가스를 다 마시며 둘이 살아남은 게 용 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2.7킬로의 작은 아이로 태어난 막내아들은
설 전에 태어나 나의 소원을 들어준 천사였다
엄마는 지금 천사와 따뜻한 아랫목에서
처음으로 설을 맞이해 보는구나
이런 호사가 짧다고 한들 뿌리치고 싶지 않은 유혹임에는 분명했다

피부색이 하얗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던 막내..
첫째와 둘째는 3.6킬로의 정상으로 태어낫지만
먹고 싶었던걸 못 먹어서 그런가 너무나도 작아
인형 옷을 입혀 키웠을 정도로 만지기도 겁날정도로 작고 귀여웠던 막내아들..
그렇게 막내아들과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유난히도 추웠던 가나 긴 겨울을 잘 이겨냈다



천국의

노란색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나서여 꽝꽝 얼었던 얼음도 땅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발톱의 새싹처럼 우리 귀염둥이 막내도 무럭무럭 잘 자라 낫다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방안에서의 기나긴 겨울 생활에 아이의 얼굴색이 누렇게 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봄 햇살에 아이가 눈을 찡그린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봄 햇살이 싫지만은 않은가 보다


백일이 다가왔지만 누구 하나 백일을 기념해줄 생각을 안 한다
이러다 우리 이쁜 막내아들 애기 때의 모습을
사진 한 장 없이 보내게 생겼다

날씨 좋은 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단단히 맘먹고 있었다

우리 동내엔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사진사 아저씨가 있었다
리어카보다 조금 더 큰 소달구지처럼 생긴 것에
초가집 모형에 가운데 의자가 놓여 있고 박이 주렁주렁 달린 뒷배경이 있는 바퀴 달린
이동식 사진관을 끌고 다니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동네를 지날 때마다 "사진 사진"을 외치며 돌아다녔다

그 소리를 듣은 애 엄마들은 일하다 말고
아이 한두 명씩을 데리고 나와 줄을서 사진을 찍곤 하였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갓 백일이 된 막내를 들춰안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덩치가 커서 의자에 앉지 못한다는 아저씨와
우리 애가 덩치가 커서 그렇지 2살밖에 안됐다는 아줌마와 실랑이하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 웃음을 자아낸다
내가 딱 봐도 대여섯은 돼 보이는 투실투실한 몸집에 사내아이였다

내 차례가 되어 사정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아이가 혼자서 앉아있지 못해 혼자서 앉을 수 있는
돌이나 지나야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하지만 백일 때의 모습을 남겨 주고 싶었던 나는
그냥 아이 안고 있는 모습 한 장만이라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계속해서 안된다는 말만 하던 아저씨가 나에게 제안을 하나 하였다

"내가 점심을 아직 못 먹어서 그러는데 점심 한 끼를 때울 수 있게 해 주면 사진을 공짜로 찍어드리리다"

이럴 때 남들 다 있는 카메라가 없는 게 아쉬웠지만
아저씨에 제안이 나쁘지 않아 흔쾌히 있는 반찬에 점심상을 차려 내놓았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진 찍기가 다 끝나고
소박한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 나서야
이 세상에 한 장뿐인 소중한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다음 달에 올 때 드리리다"

"네네 아저씨 감사해요"

한 달에 한번 방문하는 우리 동내에 오시는 날에 그때 전해 주겠다는 말을 남긴 체 아저씨는 카메라를 챙겨 길을 떠나셨다





수확의 계절 가을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그 의자에 앉지도 못했던 막내가 어느새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인형 옷이 맞을 만큼 작던 막내아들이 지금은 우리 집에서 키가 제일 크다

남편이 살아생전 그렇게 집에 사진들 가져가지 말라고 얘길 해놓은 터라
아이들은 집에 있던 사진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재작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남편이 없으니
전에 보단 자녀들이 집에 드나들기가 편하다고 한다
남편은 없지만 애들을 편하게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작년에 누구 생일이었던가?.. 집에 다들 모여 밥 한 끼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사진이야기가 나와
그동안 꽁꽁 보자기 속에 숨어 있던 사진 보따리가
열렸다
하하호호 몇 시간을 사진을 보며 웃음꽃이 피었는지 모른다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고 이제 호랑이가 없으니
애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 있으면 몇 장씩 가져가라고 했다


한참을 흑백사진이 담긴 옛날 앨범을 보던 막내가
내게 물어본다

"엄마 내 사진 말이야.. 이 사진 몇 월에 찍은 거야?"


"흑백사진은 봄에 찍은 거고 머릿 털 좀 난 건 여름에 일영에 아빠랑 휴가 가서 찍은 거야"

"그럼 머릿 털 없을 때가 봄이면 100일쯤 됐겠네?

"그렇지 그게 너 100일 즈음에 엄마가 어렵게 찍은 유일한 사진이란다"

"근데 엄마.. 여기 사진에 74년 7월이라고 찍혀있는데?"

"아니야 봄에 사랑채 안 쓰던 방 거기에 걸터앉아 찍은 거야"


50년이나 다된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보니 그러했다
아들 말대로 사진 속 나와 막내는 스물네 살의 꽃다운 나의 모습과 100일이 다가오기 전 막내의 모습이었다
근데 왜 사진 속에 날짜가 7월로 찍힌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카메라는 손목시계의 날짜를 맞추듯
수동으로 날짜를 맞추는 카메라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진사 아저씨가 날짜 바꾸는걸 잘못 맞춘듯해 보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그날 우리 말고도 사진을 찍은 4월의 따스했던 봄날의 사진들은 모두
74년 7월의 추억 속에 머물러 있을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겨울

젊었구나~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거울 속에 비친 지금의 내 모습은 누구인지 나도 잘 모를 지경이다
스물넷의 50년 전 나의 모습..
그땐 젊다는 게 푸릇푸릇하다는 게 좋은 건 줄 몰랐다
스무 살에 시집와 아이 셋을 2년 터울로 낳고
시부모 모시며 모진 세월 살다 보니 어느새 얼굴엔 검버섯이 올리 올 나이가 되었다
버섯은 좋아하는데 검버섯은 싫다
열심히 살아온 훈장 같은 것이라고 해도 싫다

내가 젊어서 얼마나 멋쟁이였는데..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거울 속엔 할머니가 되어버린 쭈굴쭈굴한
화장기 없는 얼굴의 노인만 남아있다
슬프다~

자식이 나이가 들어 철이 들었는지
요즘 부쩍 엄마를 감동시키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거면 된 거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해 보지만
그래도 이런 게 인생이라면 다시는 되돌려 다시 살아보고 싶진 않다

소풍을 너무 오래 나온듯하다..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소풍 중 어느 때가 가장 행복했는가?"라도 묻는다면

난 74년 4월의 따듯한 햇살 맞으며 막내아들과의 체온을 느끼던 그때가 내 인생에
봄소풍 같은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았다
이제야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철이 들은 걸까?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내가 내 자식의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고
내 자식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니
나도 이렇게 키웠겠다는 생각에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삶을 존중하고 싶어 졌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들을 수 있었다
왜 여태껏 엄마의 삶에 대해 들어보려 하지 않았을까
살면서 누구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었을까?
요즘에서야 느낀다
이야기를 들어주자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10대 20대 30대 이야기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엄마의 응어리를 풀어줄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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