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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ug 01. 2021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냄새

가령취

양복을 곱게 차려 입고 뒷 좌석엔 보자기로 단단히 동여맨 함을 싣고 긴장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네비가 없던 시절이라 대충 들은 얘기를 되뇌며
이정표를 따라 길을 재촉한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도착한 곳은 처 가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결혼을 하진 않았으니 처 가 가 될 곳이었다.

오늘은 함이 들어가는 날인데 처 가 쪽의 부탁 아닌 부탁으로 그냥 나 혼자 함을 지고 들어갔다
나이가 한참 위로 보이는 동서들과 처형들이 나를 반기어 주었고 손위 처남이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먼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올라 가면 친구들과 술이나 한잔하라고 두둑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서 양가 상견례를 하고
처음 가보는 처가였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첫째 동서가 빈정대듯 한마디 한다
"동서는 친구도 없나? 왜 혼자 왔어?
이런 날엔 여럿 친구들 좀 데려와서 시끌벅적 한잔 했어야지~?"

인상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첫째 동서가 될 사람이 날 우습게 봤는지 첫 대면에 반말로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함을 짊어지고 대문을 지나 현관문 앞에 멈춰서 큰 숨을 한번 들이쉰다
안에서 현관문이 열리며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반갑게 나를 반겨주신다
현관 입구에는 큰 박으로 만든 바가지 하나가 놓여 있었고
첫 발을 내디디며 바가지를 힘껏 밟아 깨라는 시늉을 장모님께서 해주셨다
매고 온 함을 거실 중앙에 내려놓고 장인어른께서
이쪽으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복도를 지나 작은 방이 보이는 곳으로 따라갔다
장인이 먼저 앞장서 불을 켜며 들어간 방엔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다
장인께서 막내 손녀사위 될 사람이라고
할머니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처음 뵙는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아무 말 없이 짧은 시간의 대면으로 할머니와의 만남을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그로부터 한 달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와이프의 친할머니셨다
와이프 에게도 듣지 못했던 할머니의 존재..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는 치매를 오래 앓아
거동이 불편하셨고 눈마저 보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는 증세가 악화되어 사람도 못 알아보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내가 그날 할머니 방에서 맡았던 냄새..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에게서도 나던 냄새..
그날 함을 가져가던 날 어딘가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
나에게 장인께서 부탁 아닌 부탁을 하셨다
노모 이야기를 하시면서 미안하다며 혼자 오기를 원하셨다

내가 나이가 한두 살씩 더 먹어갈수록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런 이유를 알았더라면 살갑게 할머님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릴걸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나는 냄새인데
내가 뭐 대단한 놈이라고
그렇게 까지 배려를 안 해주셨어도 됐다는 생각에 죄송한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노인이 되면 누구에게나 나는 냄새
그 냄새를 "가령취"라고 하는 걸 요즘에서야 알았다
가령취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지방이 쌓이고 그 지방으로 인해 나는 원인도 있지만
흔히들 많이 알고 있는 귀 뒤에서 나는 냄새
또는 오랜 시간 양치를 하며 벌어진 잇몸 사이에서 나는 냄새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서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손자 손녀가 말을 하고 재롱을 피울 나이쯤이 되면
엄마 아빠는 자기의 부모에게 손주들의 재롱떠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길 원한다
하지만 5~6세가 되어 말로 표현을 할 줄 알고
후각이 발달하면서 아이는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하곤 한다
"엄마엄마.. 할아버지 한태서 이상한 냄새나"
"나 할아버지한테 안 갈래"

그 말을 듣는 딸의 마음도
당사자인 아버지의 마음도 그 순간 많은 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라고 한다

우리 아빠가 이렇게 늙으셨구나
아.. 내가 이렇게 냄새가 날 정도로 늙었구나

각기 다른 심정 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화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은 노인의 대부분은 잇몸이 상할 정도로 이를 새게 닦는 다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하며 현재의 상황을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가령취
이름부터가 맘에 들지 않는다
의학이 발달함에 있어 너무 긴 생명 연장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람의 수명은 80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치아, 피부, 머리카락, 냄새... 사람이 만들어질 때의 수명이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그걸 억지로 늘리려다 보니 그런 가령취로 인한 고통을 겪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이 아프지 않고 냄새나지 않고 100세를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냄새나지 않고 80을 건강하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나아준 부모에게 냄새가 나서 싫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한단 말로는 부족한 복잡 미묘한 심정일 것이다



얼마 전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화사가
할머니의 시골 빈집에서 낮잠을 자는 씬이 전파를 탄 적이 있었다
그곳은 할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시고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주인 없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화사는 할머니가 생전에 입던 몸빼 바지를 입고 할머니가 평소 누워 지내 시던 안방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할머니 냄새 좋다~"를 여러 번 반복하다 이내 잠이 드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나는 가령취를 없애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예전 할머니 품에서 맡았던 냄새..
고향의 냄새..

그 가령취는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는 사랑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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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넝쿨이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예전 할머니와 호박 심으로 다니던 생각이 난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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