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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ug 11. 2021

완장은 권력을 함께 부여받은 것일까?

알량한 권력 앞에 악어새로 사는 사람들


바나나의 노란색은 좋은데 왼쪽 가슴팍에 달려있는 주번의 노란색은 싫다

병아리의 노란색은 좋은데 왼쪽 팔에 둘러있는 완장의 노란색은 싫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주번

주번의 노란색 완장을 가슴팍에 다는 날엔 책임감과 함께 권한이 주어진다

떠드는 애들을 잡아내야 하고 청소도 솔선수범 하여야 한다

선생님께 부여받은 권한이다

그 권한은 곧 권력으로 이어진다


"야.. 나가서 칠판지우개 좀 털어와"

"야.. 너네 떠들면 선생님께 이름 적어낸다"


주번은 체육 시간에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음악 시간에도 음악실로 가지 않는다

아이들의 소중한 물건들을 도둑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일주일간의 주어진 권한이 끝나면 곧 아이들의 표적이 된다

곧 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적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권력을 남용했을 때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렇게 완장의 권력을 체험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사회에 나오기 전 남자는 또 한 번의 완장을 차게 된다

군대에서의 완장의 권력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막강하다

까딱거리는 손가락 하나에 중대 인원 100여 명을 움직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계급사회라는 특수집단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특이한 경험을 하기란 살면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완장은 부정적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노란색 완장을 팔 위까지 끌어올려 옷핀을 채우는 날은 권력을 함께 부여받는 날이다

완장엔 언제나 그가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다

감독, 안전제일, 관리...

완장과 함께 셔츠 주머니에 찔러 넣은 호루라기와 필기도구는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닌다

완장을 찬 감시자가 누군가를 쳐다보며 필기도구를 꺼내 들 때면 마치 그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적을 것만 같다


정말 완장은 권력을 함께 부여받은 것일까?




1989년 재미있게 봤던 미니시리즈 생각이 난다

조형기 씨가 주연을 맡았던 "완장"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가 이렇게나 연기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시골 무지렁이의 난폭한 연기를 시대적 배경에 맞춰 디테일하게 인물 소화를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1989년 mbc 미니시리즈 "완장"

동네에서 망나니짓은 다 하고 다니는 임종술(조형기)이 동네 저수지의 감시자 역을 맡게 되며 완장을 차게 된 이후 도를 넘는 행패와

쥐꼬리 보다도 작은 권력을 이용하여 갖은 불법을 자행하며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1983년 쓰인 원작이 윤흥길의 장편소설인지는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1989년 드라마로 제작된 완장이

내 머릿속에 왜 그렇게도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그 후로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작품을 티브이에서 만나게 된다



sbs스페셜 프로그램 "짝"

짝의 전신이었던 "애정촌"

애정촌 까지는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은 그보다 앞선 2010년 "완장촌"이라는 스페셜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2부에 방영된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편이 나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프로그램이다


sbs 스페셜 "완장촌"


7명의 서로 모르는 사내들이 8일간의 합숙을 하며 완장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리얼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인도 있었고, 개그맨도 있었고, 현직 조폭도 있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모인 7인의 사내들 앞에 미션이 주어진다

제작진은 첫 번째 미션으로 저 멀리 보이는 나무 한그루를 돌아오라는 선착순 미션을 내린다


시작과 함께 대부분의 사내들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넘어진 사내도 있었고, 설렁설렁 걸어간 사내도 있었다

두 사내가 끝까지 경합하였지만 6번의 사내가 일등을 차지하였다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 1등으로 들어온 6번 사내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sbs 스페셜 "완장촌"


1등에게 수여된 상은 "완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7인의 사내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한 체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곧이어 1등을 한 사내에겐 "완장"이란 호칭이 주어지며 지령이 내려졌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2명을 뽑으라는 내용이었다

완장은 자기와 끝까지 경합한 달리기 2등을 한 사내와 끝까지 걸어서 들어온 사내 한 명을 지목하였다

곧이어 2등을 한 사내에게 꼴찌로 걸어 들어온

사내의 뺨을 세차게 때릴 것을 주문하였다

2등은 꼴등의 뺨을 장난치듯 때렸다

그러자 완장은 내 마음에 들도록 세차게 내려친 사내를 이인자로 뽑겠다고 제안하였다

서로의 뺨을 한 대씩 후려갈기기 시작한 뺨 때리기는 늦게 걸어 들어온 사내의 승리로 끝나며 바로 이인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뺨 때리기에서 패한 사내는 서열 꼴찌로 내려갔다


그렇게 1~2시간의 서열 정리가 끝난 뒤 다음으로 주어진 미션은 땅을 파 지렁이를 잡아오라는 미션이었다

첫 미션의 뺨 때리기가 장난이 아니었음을 눈치챈 참가자들은 시작과 동시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난 후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지렁이를 구해오는 데 성공했다

바로 이어 손에 든 지렁이를 먹으라는 제작진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들 망설였지만 이미 완장의 권력을 지켜본 참가자들이었다

모두가 망설일 때 한 사내가 지렁이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 뒤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완장의 교체식이 거행되었고

뺨을 맞고 굴욕을 맛보았던 사내는 바로 서열 1위 완장이 되었고

방금 전 완장의 주인공은 맨 아래 서열로 밀려났다

그리고 완장은 자기의 뺨을 때렸던 사내를 서열 2위로 앉혔다

자기와의 방금 전 적을 오른팔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완장촌이라는 스페셜 기획 프로그램은 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난 그 프로그램을 소름 돋을 정도로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권력이란 무엇일까?



완장촌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려 애쓴 작품이다

나도 완장을 차면 달라질까?

누구나 살아보지 않고는 함부로 삶을 예측할 수 없다

완장에 욕심 없던 사람도 완장을 차기 위해 독하게 변했고 완장을 차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완장이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완장촌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축소판이다




"권력이란 상대방에게 하여금 원치 않은 행동을 강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내 말에 따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세상이 오면 딱딱하던 권력도 부드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권력은 안 변한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 부드러운 권력은 없다


나는 성악설과 성선설중 성악설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다

사람은 본디 악하게 태어났지만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배움을 통해 악을 자제하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완전한 사람은 없고 완성된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완성되지 않은 사람에게 완장이 채워졌을 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익숙해질 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내 쇠사슬이 더 빛난다 내 쇠사이 더 튼튼하다


사람은 경에 빨리 적응하고 익숙함에 관대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사이 완장은 탄생한다

누가 완장이 될 것인가는 자기 스스로에 달려있다

일등이 될 것인가? 꼴등이 될 것인가?


"이등에겐 일등이 악당이고 일등에겐 모두가 악당이다"

완장은 그 악당들에게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인 것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갑질을 하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도 있다

알량한 권력 아래 이인자가 되려고 온갖 알랑방귀로 삶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는 존재한다

리더 한 사람에 의해 조직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이 바뀌는걸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봐왔다

리더를 바꿀 것인가 내가 리더가 될 것인가


잔혹하고 정글스러운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발버둥 쳐본다



완장은 권력을 함께 부여받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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